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챔피언과 추격자 처방 달라…“배터리·석화 생존 못하면 안보 흔들”

23.08.2026 1분 읽기

우리나라의 산업정책은 한국전쟁 이후 3백(설탕·밀가루·섬유) 정책에서 시작해 최근 △소형모듈원자로(SMR) △핵융합 △재생에너지 △양자 △우주항공 △첨단바이오 △첨단소재·부품 공급망 등을 아우르는 7대 시드(seed) 산업에 이르기까지 품목별 지원 전략 식으로 구성돼 왔다.

하지만 앞으로는 기존의 성장 방정식이 더 이상 통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전 세계 기술 패권 경쟁이 가속화하는 가운데 기존 통상 질서까지 재편될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서다.

재계의 한 고위 관계자는 23일 “수십 년간 최우방 관계를 유지해 온 미국과 캐나다가 ‘통상 전쟁’을 선언할 정도로 국제 질서가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며 “제품을 잘 만들어 잘 팔면 된다는 식의 산업정책은 더 이상 통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우리가 독점 수준으로 기술을 장악하면서 △생태계 갑(甲)의 위치를 유지할 수 있는 챔피언 산업 △세계적 경쟁력을 갖추고도 중국의 물량 공세에 고전하고 있는 시장 △이미 경쟁력이 훼손됐지만 국가 안보를 위해 반드시 유지해야 하는 시장 △미래 잠재력이 있어 국가가 충분한 지원을 해야 하는 시장 등을 구분해 전략적 성장 대책을 짜야 한다는 의미다. 대한민국 최초 경제신문으로 올해 창간 66주년을 맞이한 서울경제신문이 1등 산업과 2·3등 산업을 정교하게 구분하고 여기에 맞춤 대응할 수 있는 ‘1·2·3 성장전략’ 구축을 제언하는 이유다. 이미 세계 초일류 경쟁력을 갖춘 반도체 등이 1등 산업, 중국에 고전하는 전기차·배터리·태양광·석유화학 등이 2등 산업, 바이오와 방산 등이 3등 산업이라고 볼 수 있다.

2023년 비서구권 학자 최초로 슘페터상을 수상하는 등 ‘파괴적 혁신’의 대가로 잘 알려진 이근 서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산업에도 맞춤형 전략이 반드시 필요하다”며 “산업별 특성에 맞춰 ‘경로창출형’ 전략을 쓸지 ‘도약형’ 전략을 쓸지 검토하는 작업부터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로창출형 산업 전략은 우리나라가 세계 최초로 성공한 ‘부호분할다중접속(CDMA)’ 방식 휴대폰이 대표적인 사례다. 당시 통신 시장을 주도하던 미국과 일본·유럽은 ‘시분할다중접속(TDMA)’ 등 기존 기술을 개선하는 데 초점을 맞췄는데 한국은 완전히 새로운 방식에 도전해 무선통신 시대의 지평을 열었다.

도약형 전략은 삼성이 1992년 세계 최초로 개발한 64MB(메가바이트) D램 양산 과정과 유사하다. 삼성이 반도체 시장에 처음 뛰어들 때만 해도 “이러다 회사가 망할 것”이라는 비아냥까지 나왔지만 끊임없는 투자 속에 생존을 뛰어넘는 기술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전기차를 넘어 도심항공교통(UAM), 드론 등 방산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반드시 원천 기술을 보유하고 있어야 하는 배터리가 이 같은 도약형 전략에 어울리는 산업군이다. 이 교수는 “국민성장펀드를 조성해 리벨리온이나 퓨리오사AI에 투자한 것도 대표적 도약형 기법이라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도약형 전략의 핵심은 기업들에 충분한 생존 시간을 보장하는 것이다. 박양수 대한상공회의소 지속가능이니셔티브(SGI) 원장은 “초기 투자가 일어나고 있는 산업의 경우 오랜 시간 적자를 감수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며 “이런 경우 정부가 직접 지분투자를 해서라도 마중물을 주는 정책이 확대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중국이 장기간 보조금을 퍼부어 조선·철강은 물론 반도체·전기자동차·드론 등 분야에서 급성장했듯이 특정한 산업 분야에서는 정부가 인내자본 역할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산업정책에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함께 나온다. 권남훈 산업연구원장은 “지난 약 20여 년간의 산업정책은 수평적이었다”며 “주로 연구개발(R&D)과 세액공제 중심으로 모든 산업 영역에 공평하게 혜택을 주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권 원장은 “이제 전 세계적으로 산업정책이 전략 산업 육성으로 재편되고 있다”며 “한국이라 해서 모든 산업을 다 1등으로 키울 만큼 자원이 충분한 것이 아니므로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박 원장 역시 “기존 산업정책의 상당 부분이 세액공제였는데 이는 이익이 나지 않으면 아무런 혜택이 없는 정책”이라며 “이런 환경에서는 혁신적인 영역에서 장기적인 투자가 일어나기 어렵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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