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글로벌 박스오피스를 보면 정말 놀랍습니다. 올해 전 세계 극장가를 가장 뜨겁게 달군 작품은 단연 ‘스파이더맨: 브랜드 뉴 데이’인데요. 박스오피스모조에 따르면 ‘스파이더맨: 브랜드 뉴 데이’는 21일 기준 월드와이드 20억 4643만 달러의 흥행 수익을 기록하며 올해 박스오피스 1위를 질주하고 있습니다. 우리 돈으로 약 2조 8000억 원에 달하는 금액입니다.
한국 시장과 비교해 보겠습니다. 올해 한국 박스오피스 1위는 ‘왕과 사는 남자’로 1632억 원의 흥행 수익을 냈습니다. 관객 수는 1691만 명으로, 1761만 명을 기록한 ‘명량’에 이어 역대 2위입니다. 물론 흥행 수익에서는 ‘명량’의 1357억 원을 앞섰습니다. 티켓 가격 상승의 영향이 반영된 결과입니다.
다시 ‘스파이더맨’으로 넘어가 보겠습니다. ‘스파이더맨’은 이변이 없는 한 올해 글로벌 흥행 1위를 굳힐 것으로 보입니다. 이제 남은 기록은 올해 글로벌 1위를 넘어 역대 1위까지 넘볼 수 있느냐입니다.
현재 역대 월드와이드 박스오피스 1위는 ‘아바타’로 29억 2371만 달러입니다. 2위 ‘어벤져스: 엔드게임’은 27억 9944만 달러입니다. ‘스파이더맨: 브랜드 뉴 데이’와의 격차는 각각 약 9억 달러, 7억 5000만 달러 수준입니다. 아직 차이는 꽤 있지만 워낙 빠른 속도로 흥행 수익을 쌓고 있어 역대 1위 가능성까지 거론되고 있습니다.
올해 글로벌 톱5의 성적을 봐도 재미있습니다. 2위는 13억 달러를 돌파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오디세이’(13억 567만 달러), 3위는 ‘토이 스토리 5’(11억 1638만 달러), 4위는 마이클 잭슨의 생애를 다룬 ‘마이클’(10억 1607만 달러), 5위는 ‘슈퍼 마리오 갤럭시 무비’(10억 1254만 달러)입니다. 모두 10억 달러를 넘어섰습니다.
그런데 이 작품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하나의 공통점이 보입니다. 스파이더맨, 토이 스토리, 마리오처럼 이미 전 세계에 팬덤을 가진 지식재산(IP)이 있고, ‘마이클’처럼 누구나 아는 인물이 있습니다. ‘오디세이’ 역시 서구권에서 오랫동안 사랑받아온 고전 서사를 크리스토퍼 놀란이라는 이름과 결합했습니다. 즉 ‘아는 맛’과 인기 IP가 만났을 때 만들어지는 시너지를 글로벌 관객들이 선택한 셈입니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떨까요. 한국 극장가의 흥행 공식은 조금 달랐습니다.
올해 국내 박스오피스에서 가장 강력한 흥행을 기록한 작품은 글로벌 톱5에 들어간 할리우드 블록버스터가 아니라 한국 영화 ‘왕과 사는 남자’입니다. 한국 영화의 저력을 보여준 사례이자, 한국 관객들이 한국 영화에 다시 한번 강하게 반응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큰 작품입니다. 글로벌 관객은 ‘스파이더맨’을 선택했지만, 한국은 ‘왕사남’을 선택한 것입니다.
물론 한국 관객이 할리우드 영화를 외면한 것은 아닙니다. ‘스파이더맨: 브랜드 뉴 데이’를 비롯해 글로벌 흥행작들이 국내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습니다. 하지만 올해 국내 극장가의 회복을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작품은 역시 ‘왕과 사는 남자’입니다.
여기서 또 흥미로운 차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글로벌 시장에서 통하는 ‘익숙함’은 스파이더맨이나 토이 스토리, 마리오처럼 전 세계인이 알고 있는 IP입니다. 반면 한국에서 관객을 극장으로 끌어들인 ‘익숙함’은 한국적인 역사와 정서, 그리고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이야기입니다. 결국 관객이 원하는 것은 비슷한데, ‘무엇이 익숙하냐’가 다른 것입니다.
그런데 ‘왕과 사는 남자’의 흥행을 단순히 익숙한 역사 이야기의 힘으로만 설명하기에는 부족합니다. 영화 속 단종은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고, 조선의 왕 가운데서도 손꼽히는 적통임에도 숙부인 수양대군에 의해 왕위에서 쫓겨난 뒤 비참한 최후를 맞았습니다. 개인의 비극으로 보면 슬픈 이야기지만, 사회적인 관점에서는 부당한 권력에 의해 한 사람의 삶과 정당한 권리가 짓밟힌 역사이기도 합니다.
관객들은 이 비극과 부당함에 공감했고, 그 감정을 극장에서 함께 나눴습니다. 1700만 명에 가까운 관객이 이 이야기에 응답한 셈입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올해 극장가의 회복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시대가 되면서 극장에 가는 관객의 기준도 달라졌습니다. 이제는 단순히 ‘볼 만한 영화’라고 해서 극장을 찾지 않습니다. 집에서도 큰 화면으로 콘텐츠를 즐길 수 있고, 언제든 원하는 시간에 영화를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극장에 가려면 ‘이건 극장에서 봐야 한다’는 확실한 이유가 필요합니다. 스케일이든, 공감이든, 체험이든 말입니다. 특히 올해 여름 극장가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가장 큰 회복세를 보였습니다. 관객들이 다시 ‘극장의 경험’을 찾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극장에서의 즐거움을 다시 찾은 관객들은 특별관으로도 향했습니다. ‘스파이더맨: 브랜드 뉴 데이’와 ‘오디세이’의 SCREENX, 4DX, 아이맥스 등 주요 특별관은 높은 객석 점유율을 기록하며 N차 관람을 이끌었습니다.
작품마다 내세우는 최적의 관람 포맷도 달랐습니다. ‘스파이더맨’은 기획·제작 단계부터 SCREENX 상영을 염두에 두고 설계됐고, ‘오디세이’는 172분에 달하는 전편을 아이맥스 70㎜ 필름카메라로 촬영한 작품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관객들의 궁금증을 증폭시켰습니다.
결국 올해 극장가의 회복은 단순히 흥행작이 많아졌다는 의미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관객들이 다시 한번 ‘영화’와 ‘극장’을 구분하기 시작했다는 것이 더 중요해 보입니다.
영화는 OTT에서도 볼 수 있지만,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경험은 대체할 수 없습니다. 거대한 스크린과 압도적인 사운드, 특별관의 기술뿐만 아니라 수백명의 관객이 한 공간에서 함께 웃고 놀라고 숨죽이는 경험까지 포함하기 때문입니다.
혼자 집에서 영화를 볼 때는 내 웃음만 들리지만, 극장에서는 옆자리 관객의 웃음이 또 다른 웃음을 만들어냅니다. 결정적인 장면에서는 객석 전체가 숨을 죽이고, 영화가 끝난 뒤에는 낯선 사람들끼리 같은 장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습니다.
어쩌면 이것이 OTT 시대에 극장이 살아남을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이유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글로벌에서는 ‘스파이더맨’이 20억 달러를 넘어 역대 흥행 1위까지 바라보고 있고, 한국에서는 ‘왕과 사는 남자’가 1700만 명에 가까운 관객을 극장으로 불러들였습니다. 두 시장의 흥행작은 전혀 다르지만, 관객을 움직인 핵심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이 영화는 극장에서 봐야 한다’는 마음을 만들어냈다는 것입니다.
결국 극장가의 미래는 OTT와의 경쟁에서 얼마나 많은 영화를 빼앗아 오느냐에 달린 것이 아니라, 극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영화의 가치를 얼마나 강력하게 보여주느냐에 달려 있는 게 아닐까요.
올해 극장가가 조금씩 되살아나는 모습을 보면서, 오랜만에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영화를 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영화관에 가는 것.”
연승의 엔터 만담(萬談)
한 주간 엔터테인먼트업계에서 가장 뜨거웠던 이슈와 화제의 콘텐츠를 골라 이야기합니다. 배우와 K팝 아티스트 등의 새로운 소식부터 영화·드라마·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K팝의 흥행작과 트렌드까지, 그냥 지나치기엔 아쉬운 엔터테인먼트 소식을 쉽고 흥미진진하게 풀어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