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달러 환율이 약 10개월 만에 1400원 아래로 떨어졌다. 미국과 일본 등 주요 선진국의 장기물 금리가 최근 급등세를 나타내고 있기는 하지만 미 연방준비제도(Fed· 연준)가 당장 9월에는 기준금리를 인하하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확산하면서 단기적으로 달러 약세가 나타났다. 수출 기업들의 달러 매도 물량도 영향을 미쳤다.
19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보다 14.1원 내린 1397.7원에 마감했다. 장중에는 1396.0원까지 떨어졌다. 환율이 1400원 아래로 내려온 것은 지난해 10월 2일 이후 약 10개월 반 만이다. 반도체 기업들과 역외 거래주체들의 달러 매도가 함께 늘면서 환율 하락을 이끌었다.
전문가들은 최근 원화 강세가 기존 거시경제의 상식과 다른 흐름을 보이고 있다고 진단한다. 통상 미국 국고채 금리가 상승하면 달러자산이 강세를 보이면서 원화가 약세를 보이는 게 상식으로 통했다. 실제 미국 30년물 국채금리는 18일(현지시간) 연 5.31%까지 올라 2007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고 10년물도 4.73%까지 상승했다. 일본 10년물 금리도 2.945%까지 올라 1996년 이후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하지만 최근 시장에서는 미국의 금리 상승을 ‘수익률 상승’이 아닌 ‘리스크 확대’로 보는 분석이 우세하다. 미국의 2026회계연도 재정적자는 7월까지 1조 7990억 달러로 이미 전년도 연간 적자 1조 7750억 달러를 넘어섰다. 재정적자 확대에 따른 국채 발행 증가와 이자비용 부담이 장기금리를 끌어올리는 요인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이남강 한국투자금융지주 이코노미스트는 “금리가 올라가는 게 수익률이 높아지는 게 아니라 리스크에 대한 프리미엄을 요구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환율은 단순한 금리 수준보다 각국의 상대적인 실질 수익률을 반영하는 만큼, 미국 금리가 올라도 재정·물가 불안이 커진다면 달러 강세로 이어지지 않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한국의 상대적인 펀더멘털도 원화 강세를 뒷받침하고 있다. 미국의 재정·물가 위험과 일본의 재정 부담, 중국의 성장 둔화가 부각되는 가운데 한국은 반도체를 중심으로 수출과 성장 지표가 견조하기 때문이다.
다만 최근 원화 강세가 구조적으로 굳어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조용구 신영증권 선임연구원은 최근 환율 하락을 이끈 반도체 기업들의 달러 매도 물량이 한 달 이상 이어지면서 소진 국면에 들어선 것으로 봤다. 조 연구원은 “1300원 중반 아래로 내려가기보다는 8월 말~9월께 단기 저점을 형성한 뒤 1400원 또는 1400원 초반까지 반등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최규호 한국투자증권 이코노미스트도 환율이 당분간 1400원 안팎에서 움직이다 연말에 가서야 1300원대 후반에서 안정될 가능성에 무게를 뒀다.
결국 원화강세 지속 여부는 반도체 수출 등 펀더멘털에 의존할 가능성이 크다. 이 이코노미스트는 “이란 관련 리스크가 아직 국내 물가에 크게 반영되지 않았다”면서 “물가 지표로 나타나면 지금 내려간 폭이 조금 되돌려지지 않을까”라고 내다봤다. 반도체 경기 둔화와 에너지발 인플레이션이 현실화하면 원화에 우호적인 상대적 여건도 달라질 수 있다는 의미다.
경제 체력의 중요성은 최근 미 ·일 양국의 엔화 개입 사례에서도 확인된다. 미국과 일본의 외환시장 개입으로 달러당 엔화 환율은 160엔에서 155엔까지 떨어졌지만 이후 다시 159엔 안팎으로 반등했다. 도이체방크는 “통화가치는 일회성 시장 개입으로 해결되기 어렵다”고 분석했다.
한편 이날 원엔 재정환율은 장중 100엔당 876.64원까지 하락해 2024년 7월 17일(870.97원) 이후 최저치를 나타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