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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진 68% “생전 서약도 가족 반대로 무산”…유교 문화보다 무서운 ‘시스템 불신’

19.08.2026

생전에 장기기증을 서약했더라도 유가족의 반대로 기증이 무산되는 사례가 빈번한 것으로 드러났다. 부모에게서 받은 몸을 함부로 훼손해선 안된다는 유교적 가치관과 장기기증자 시신 수습 등 예우에 대한 불신이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18일 서울경제신문이 연중 캠페인 ‘이어진 숨, 피어난 삶’의 일환으로 이식외과 전문의와 장기이식 코디네이터 등 현장 의료진 110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진행한 결과, 응답자의 68.2%는 ‘생전에 장기기증 희망등록을 했어도 유가족의 반대로 기증이 무산된 사례를 경험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현행법상 장기기증 희망등록은 법적 구속력이 없다. 생전에 장기기증 의사를 밝혔더라도 가족이 반대하면 기증이 이뤄지지 않는다.

또 장기기증 신청 방법을 몰라 기회를 놓치는 사례도 적지 않았다. 현장에서 실제 기증 의사가 있으나 기증 신청 경로 및 절차를 몰라 어려움을 겪는 사례를 겪은 적이 있으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41.8%가 ‘경험했다’고 답했다. ‘경험하지 못했다’는 응답은 32.7%, ‘잘 모르겠다’는 응답은 25.5%로 조사됐다. 생명나눔의 의지가 실제 기증으로 이어지도록 돕는 안내 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의미다.

현장 의료진들은 한국의 장기기증 문화 확산의 저해 요인으로 ‘신체 훼손을 기피하는 유교 문화’(38.2%)를 꼽았다. 이어 기증 수술 후 ‘유가족 예우 등 국가 지원 시스템에 대한 신뢰 부족’(35.5%)이 뒤를 이었다. 장기기증이 저조한 원인을 단순히 국민 의식 탓으로만 돌리기 어렵다고 해석할 수 있다.

유가족이 장기기증을 최종 거부할 때 가장 자주 언급하는 문화적·심리적 이유를 묻는 문항에서도 이러한 불신이 확인됐다. ‘고인의 신체를 온전히 보존해 장례를 치러야 한다는 전통적 유교 사상’(37.3%) 다음으로 ‘기증 수술 후 시신 수습이나 예우가 소홀할지 모른다는 불안감’(21.8%)에 대한 응답 비율이 높았다. 이어 ‘생전 기증 의사가 확실하지 않다는 유가족 간 의견 불일치’(20.9%), ‘주변 친척이나 이웃의 시선’(20%) 순으로 나타났다.

생전 기증 의사에도 유가족이 반대할 때 의료진이 겪는 가장 큰 고충을 묻는 질문에 응답자의 42.7%는 가족의 동의를 구하는 사이 벌어질 수 있는 ‘장기 상태의 악화 가능성’을 선택했다. 또 ‘유가족 설득 과정에서 발생하는 갈등’도 35.5%(39명)에 달했다. 다음으로 ‘기증 무산으로 인한 허탈감’(14.5%), ‘고인의 뜻을 잇지 못했다는 죄책감’(7.3%) 등이 뒤를 이었다. 기증자와 가족의 의사가 충돌할 경우 설득 과정이 길어지면서 의료진의 감정적 소모가 커질 뿐 아니라 이식 가능한 장기의 상태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의미다.

의료진들은 이러한 문제의 해결 방안으로 ‘사전 서약자에 한해 상속세 감면 등 가족이 체감할 수 있는 혜택 연계’(36.4%)를 가장 많이 꼽았다. 다만 장기 매매와 재산상 이익 제공을 금지한 현행법의 취지와 충돌할 수 있어, 신중한 법적·윤리적 검토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본인 서약의 법적 구속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응답’(32.7%)도 근소한 차로 꼽혔다. 유가족의 반대와 무관하게 고인의 자기결정권을 우선해야 한다는 취지지만, 이 역시 남은 가족의 애도와 결정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윤리적 논란이 뒤따를 수 있다. 그밖에 ‘기증 서약 단계에서 가족 1명 이상의 연대서명을 받도록 제도화’(21.8%)와 ‘의료진이 유가족을 설득할 수 있는 상담 기법 보급’(9.1%)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의료진들은 학교 교육 단계부터 생명나눔의 의미와 절차를 교육해야 한다는 데 공감했다. 학교와 사회 교육을 통해 장기기증은 숭고한 나눔이라는 인식을 확산할 방안을 묻는 질문에 ‘초·중·고 정규 교육과정 내 생명나눔 및 보건의료 윤리 교육 의무화’(76.1%)가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 ‘운전면허 시험 등 성인 교육 과정에 장기기증 관련 내용을 필수적으로 포함해야 한다는 응답’은 9.2%(10명)로 조사됐다.

국민의 낮은 인지도 개선을 위해 가장 시급한 과제로는 응답자의 58.2%가 ‘정부와 유관기관이 주도하는 공익 캠페인 및 홍보 확대’를 꼽았다. 이어 ‘정규 교육과정에 장기기증 인식 교육을 도입해야 한다’는 응답이 29.1%로 조사됐다.

현장 의료진들은 장기기증 희망등록 건수를 늘리는 데만 집중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희망등록의 법적 의미와 실제 기증 절차, 가족 동의의 필요성, 기증 수술 후 시신 수습과 장례 과정, 유가족 지원 제도까지 구체적으로 알려야 생전 의사가 실제 기증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이유다. 최규성 삼성서울병원 이식외과 교수는 “장기기증 활성화의 출발점은 기증을 선택하지 않은 분들의 결정도 온전히 존중받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라며 “사후 절차와 예우를 투명하게 공개해 생명나눔의 가치가 자연스럽게 확산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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