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은행의 가계대출 공급 여력을 두 배로 늘리면서도 주택담보대출 한도와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등 주택 구입자에게 적용되는 핵심 규제는 유지하기로 했다. 대신 청년에게는 4억 원 이하 오피스텔·빌라를 살 때 저금리 정책대출을 제공한다. 대출 창구가 막히는 문제를 줄이는 동시에 청년·신혼부부를 선별 지원하겠다는 구상이지만 무주택 실수요자가 체감할 수 있는 변화는 제한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14일 금융계에 따르면 금융위원회가 전날 발표한 ‘부동산 시장 안정을 위한 금융 종합대책’은 올해 금융권 가계대출 증가율 목표를 당초 1.5%에서 3% 수준으로 높였다. 추가 대출 여력은 재건축·재개발 이주비와 중도금·잔금대출, 청년 주거 안정과 실수요자 지원에 활용할 방침이다.
대출 총량이 늘어도 집을 살 때 적용되는 규제는 달라지지 않는다. 규제지역 LTV 40%, 은행권 DSR 40%를 유지하고 주택 가격별 주담대 한도도 15억 원 이하 6억 원, 15억 원 초과~25억 원 4억 원, 25억 원 초과 2억 원을 그대로 적용한다. 신진창 금융위 사무처장은 “부동산 시장이 확고하게 안정될 때까지 LTV 40%, DSR 40%, 주담대 6억 원, 4억 원, 2억 원 한도는 당분간 그대로 간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에 따라 총량 확대가 은행의 대출 취급 여력을 늘리는 효과는 있지만 자금력이 부족한 무주택자의 주택 구입 여건을 크게 바꾸지는 못할 것으로 봤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과 교수는 “총량이 늘더라도 LTV와 DSR, 주담대 6억 원 한도가 유지되면 소득이나 자기자본이 부족한 청년·무주택 실수요자는 여전히 대출 한도에 막힐 수 있다”고 말했다. 오정근 서울과학종합대학원 석좌교수도 “주담대 6억 원 한도를 풀지 않은 만큼 주택 구입자에 대한 효과는 크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은행권에서는 연말 대출 창구가 다시 좁아질 가능성도 거론된다.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집단대출 수요까지 감안하면 여유가 많지 않다”며 “연말로 갈수록 오픈런을 완전히 잠재우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금융계 관계자는 “총량을 3%로 높이면 실수요자에게 도움이 되겠지만 한 은행의 추가 여력이 8500억 원 정도 늘어나는 수준이라 현재 수요를 모두 소화하기에는 부족할 수 있다”고 말했다.
대출 규모를 주택 가격에 따라 일률적으로 제한하는 데 대한 문제 제기도 이어진다. 금융계의 한 관계자는 “대출 한도가 소진돼 계약금이나 잔금 마련에 차질을 빚는 피해를 줄이는 효과는 있을 것”이라면서도 “소득과 상환 능력이 다른 차주에게 똑같은 한도를 적용하면 역차별이 생길 수 있는 만큼 차주의 소득에 맞춰 DSR을 적용하는 게 맞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이 같은 대출 규제를 유지하는 대신 청년·신혼부부에는 별도의 정책금융을 제공한다. 내년 1월 출시 예정인 ‘청년미래보금자리론’은 만 39세 이하 생애최초 주택 구입자가 4억 원 이하, 전용면적 85㎡ 이하 비아파트를 살 경우 LTV를 최대 80%까지 적용한다. 소득 기준은 연 7000만 원 이하이며 신혼부부는 부부 가운데 한 명만 요건을 충족하면 된다. 금리는 연 3% 수준이다.
당국이 우선 대상으로 삼은 주택은 오피스텔과 빌라다. 올 5월 서울 40~60㎡ 오피스텔 평균 매매가격이 4억 1000만 원인 점 등을 감안했다. 다만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가격이 13억 원을 웃도는 상황에서 청년층의 주거 수요를 비아파트로 돌리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서 교수는 “아파트와 빌라·오피스텔 사이에는 환금성과 향후 가치 상승 기대 측면에서 차이가 크다”며 “단순히 금리를 낮춘다고 비아파트로 수요가 이동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우병탁 신한은행 프리미어 패스파인더 전문위원은 “정부 입장에서는 대출 규제를 완화했을 때 집값이나 전월세 가격이 다시 오를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라면서도 “청년층은 좀 더 완화된 금융 조건을 기대했을 텐데 이번 대책은 그런 기대에는 미치지 못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비아파트 가격이 안정적으로 오르지 않는다면 높은 LTV를 활용해 집을 산 청년층은 오히려 부채 부담이 커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임차 지원은 확대한다. 정부는 내년 1월 ‘청년 전월세결합보증’을 도입해 전세보증금과 월세대출을 함께 보증하고, 10월부터 청년특례 전세대출보증 대상 연령을 만 34세 이하에서 39세 이하로 높인다. 신혼·유자녀 가구의 대출 한도도 2억 원에서 3억 원으로 확대한다. 신혼부부 보금자리론 소득 기준 역시 부부 합산 방식 대신 부부 중 한 명이 기준을 충족하는 방식으로 바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