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황 부진과 중국산 공급 과잉 등 이중고에 시달리던 국내 철강·석유화학 업계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글로벌 인공지능(AI) 인프라 수요를 발판 삼아 재도약을 꾀하고 있다. 글로벌 AI 인프라 시장이 연 20%대의 고성장세를 이어갈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전통 제조기업들은 사업 구조를 AI·반도체와 전력 인프라 중심으로 재편하며 신성장 동력 마련에 속도를 내는 모습이다.
13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 주요 철강사들은 미국 AI 인프라 시장을 겨냥해 고부가 강재 수출을 대폭 늘리고 있다. 현대제철(004020) 은 3월 차세대 전력 인프라 시장을 공략하기 위한 태스크포스(TF)를 신설한 후 최근까지 AI 데이터센터용 철강재 공급 프로젝트를 7건 수주했다. 이달 진행한 컨퍼런스콜에선 향후 AI 데이터센터 시장을 타깃으로 철근·형강·열연·냉연·후판 등을 포괄하는 ‘토털 패키지’ 공급 전략을 강화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포스코 역시 지난달 AI 전환(AX) 전담 조직을 구축하고 철강 공급망을 첨단 시장 중심으로 개편하는 작업이 한창이다. AI 데이터센터 부문에선 냉각수 탱크용 및 차·단열 특화강을 개발하고 이를 적용 솔루션과 패키징해 차별화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또 변압기 등 전력기기와 휴머노이드 액츄에이터에 활용할 수 있는 고부가 전기강판 개발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포스코는 이를 통해 지난해 38만 톤 규모였던 AX 시장 판매량을 2028년 52만 톤, 2030년 100만 톤까지 확대하겠다는 방침이다.
동국제강(460860) 은 자체 개발한 AI 데이터센터용 특수 철강재를 통해 첨단 시장 공급처를 넓혀가고 있다. 동국제강이 데이터센터의 초대형·고하중 강재 수요에 맞춰 개발한 용접형강 ‘디-메가빔’의 경우 현재 2~3개월치 주문이 밀려 있을 만큼 판매 호조가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철강협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국내 철강사들의 대미(對美) 철근 수출량은 약 48만 3500톤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약 1만 4500톤)보다 33배 넘게 급증했다. 철근은 데이터센터 등 구조물을 구축하는 데 가장 많이 사용되는 철강재 중 하나다. 통상 데이터센터 1GW(기가와트)당 18~20만 톤의 철강재가 사용되는 것으로 추산된다. 김기룡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하반기 AI·에너지 소재와 관련한 철강 수요 확대 기대감은 여전히 유효하다”며 “정부의 3대 메가프로젝트 발표와 대규모 AI 데이터센터 건설이 예상되는 가운데 수주 실적이 점차 확대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석유화학 업계도 AI 데이터센터의 안정적 운영에 필수적인 에너지저장장치(ESS) 소재를 중심으로 방향을 틀어 새 먹거리를 키우고 있다.
LG화학(051910) 은 ESS 배터리에 탑재되는 분리막과 방열접착제로 이익 성장을 모색 중이다. 사측은 지난해 분리막 생산라인 가동률을 축소하는 계획을 세웠지만 ESS 수요가 커지자 이를 철회했다. 실제 LG화학의 첨단소재 부문은 분리막 판매 확대에 힘입어 올 2분기 199억 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하며 전년 동기 대비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롯데케미칼(011170) 은 ESS 배터리 하우징용 플라스틱 제품과 전해질 유기용매를 중심으로 소재 역량을 확충하는 한편 차세대 배터리인 바나듐이온배터리(VIB) 개발에도 착수했다. SKC도 동박 판매 증가에 힘입어 올 2분기 최대 매출(2540억 원)을 기록했는데 향후 정읍 공장을 동박 관련 연구개발(R&D) 중심으로 전환하고, 양산을 말레이시아 공장에 맡겨 생산 효율화를 이루겠다는 계획이다.
AI 인프라 투자 활성화에 따라 국내 엔지니어링 업계 역시 체질을 첨단 산업 중심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삼성E&A(028050) 는 국내외에서 첨단 산업·뉴에너지 관련 플랜트 프로젝트 등을 잇달아 맡으며 상반기에만 약 7조 6000억 원의 수주를 기록했다. SK에코플랜트 역시 SK 울산 AI 데이터센터 사업을 통해 전력과 통신, 냉각 등을 포괄하는 통합 시공 경험을 쌓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