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2차 공공기관 지방이전 논의가 본격화하는 가운데 이전 대상에서 예금보험공사를 제외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금융회사와 금융당국이 서울에 밀집한 상황에서 예보가 지방으로 이전할 경우 금융위기 대응력이 떨어질 수 있고 전문인력 이탈로 조직 역량까지 약화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예금보험공사노동조합은 11일 서울 중구 예보 본사에서 ‘예금보험기구의 역할과 적정 입지’ 연구발표회 및 정책토론회를 열고 이 같은 내용의 연구용역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는 노조 의뢰로 고동원 법무법인 린 금융법제연구센터장과 강민구·박보인·김은수 변호사가 공동 수행했다.
연구진은 금융위기 대응성과 금융정보 접근성, 조직 안정성, 정책 부합성, 비용 효율성을 종합적으로 분석해 서울에 예보를 유지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판단했다. 예보는 평시 부실 징후 감시부터 위기 시 부실 정리와 자금 지원, 인수자 협상까지 금융회사·관계기관과 긴밀한 협업이 필요한 기관이라는 설명이다. 고 센터장은 “금융안정 기능은 예금보험기구만이 하는 것이 아니고 금융감독기관, 정책기관, 더 나아가 중앙은행과 밀접한 업무 협조를 해야 되는 특성이 있다”고 말했다.
최근 디지털 뱅크런으로 위기 전개 속도가 빨라지면서 시장의 비정형 정보와 당국 간 신속한 협업의 중요성도 커졌다. 김 변호사는 2023년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사태를 사례로 들며 “하루 만에 약 420억 달러의 예금 인출 요구가 발생했고 폐쇄와 정리 개시까지 사실상 48시간 이내에 상황이 급속도로 진행됐다”고 말했다.
이상훈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역시 “금융위기 대응은 평시 행정과 달리 골든타임이 핵심”이라며 “(금융 공공기관을) 물리적으로 분리하는 결정은 최소한 매우 엄격한 기능 검증 없이 추진돼서는 안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해외 주요국의 예금보험기구도 수도나 금융중심지에 자리 잡고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미국 연방예금보험공사(FDIC)는 워싱턴DC, 영국 금융서비스보상기구(FSCS)는 런던, 일본 예금보험공사(DICJ)는 도쿄에 위치한다. 김 변호사는 “각 국가의 금융 제도나 조직 형태에는 차이가 있지만 공통적으로 예금보험기구는 금융정책·감독기관, 금융시장 중심지와의 지리적·제도적 접근성을 중요하게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방이전을 통한 지역경제 효과는 제한적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예보 임직원은 855명이고 최근 5년간 일반 정규직 신규 채용은 연평균 약 37명이다. 비과세 비영리 법인이어서 법인지방소득세 효과가 없고 예금보험기금도 안전자산 중심으로 운용돼 특정 지역 산업에 투자하기 어렵다는 게 연구진의 설명이다. 특히 내부 구성원 설문조사 결과 지방이전 시 계속 근무할 의향이 있다는 응답은 전체의 약 24%에 그쳤고 근속 5년 미만은 12%, 5급 실무직은 9.5%에 불과했다.
서울에 위기 대응 핵심 기능을 남기면서 지역 거점을 활용하는 대안도 제시됐다. 전선애 중앙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서울에 ‘금융안정 코어’를 두고 비수도권에는 운영·복원력 허브와 현장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전 교수는 “예보의 적정 입지는 어디에 있는가보다 어떤 기능이 얼마나 빨리 작동하는가의 문제”라고 말했다.
예보 노조도 이날 연구 결과를 토대로 정부의 지방이전 정책이 금융안정 기능의 특수성을 고려해 신중하게 추진돼야 한다고 밝혔다. 김영헌 예보 노조위원장은 “예금보험공사는 금융회사 부실 시 예금자 보호와 금융시장 안정을 책임지는 국가 핵심 금융안전망 기관”이라며 “정부의 지방이전 정책은 매우 신중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