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경기도의 기본소득·기회소득 관련 예산이 20% 넘게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세입 악화로 ‘재정 비상 상황’까지 선언한 경기도가 현금성 복지 사업의 속도 조절에 들어가면서다. 일부 사업은 지급이 중단됐고 당초 예정했던 금액을 절반만 주거나 추가경정예산 편성을 전제로 지급을 이어가는 사업도 생겨났다. 올해 농어촌 기본소득 시범사업을 시작하고 청년·예술인 기본소득까지 검토 중인 정부 역시 재원과 사업 효과를 충분히 따지지 않은 채 제도를 넓힐 경우 비슷한 문제가 나타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0일 경기도에 따르면 기본소득과 기회소득 관련 도비 예산은 2022년 1826억 원에서 지난해 2498억 원으로 3년 만에 36.8% 증가했다. 하지만 재정난이 본격화한 올해는 1972억 원으로 지난해보다 526억 원(21.1%) 감소했다.
실제 사업 현장에서는 예산 부족에 따른 지급 축소가 잇따르고 있다. 도는 이달부터 ‘기후행동 기회소득’ 리워드를 지급하지 않는다. 걷기와 대중교통 이용 등 16개 탄소중립 활동에 참여한 도민에게 실적에 따라 연간 최대 6만 원을 지역화폐로 지급하는 사업이다. 2024년 7월 도입된 뒤 가입자가 200만명을 넘어섰지만 올해 사업비 350억 원 중 300억 원 가까이가 소진되자 재정 상황을 고려해 8월 활동분부터 리워드를 중단하기로 했다.
‘예술인 기회소득’은 지급액 자체가 절반으로 깎였다. 예술활동증명서를 보유한 19세 이상 예술인 가운데 소득인정액이 기준 중위소득 120% 이하인 사람에게 연간 150만 원을 지급하는 사업으로 경기도는 올해 한 차례 75만 원만 지급하기로 했다. 당초 부족한 사업비를 추경에서 확보하는 방안을 검토했지만 재정난으로 추가 지급을 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경기민예총은 지급 축소 철회를 요구하는 서명운동에 나선 상태다.
농어민과 청년에게 지급하는 사업도 예산 확보가 관건이 됐다. 농어민에게 연간 60만~180만 원을 지역화폐로 지급하는 ‘농어민 기회소득’의 도비 예산은 지난해 680억 원에서 올해 460억 원으로 줄었다. 도는 부족분을 추경에 반영할 계획이었지만 재정 여건이 악화하면서 추가 예산 확보 여부가 불투명해졌다.
이재명 대통령이 2019년 경기지사 시절 도입한 ‘청년 기본소득’도 올해 4분기분 예산이 편성되지 않았다. 만 24세 청년에게 분기별 25만 원씩 연간 최대 100만 원을 지급하는 제도다. 도는 추경을 통해 4분기 예산을 마련할 계획이지만 예산 확보 여부에 따라 지급 일정에 차질이 빚어질 가능성이 있다.
현금성 복지 사업의 조정은 경기도의 전반적인 재정 사정이 나빠진 가운데 이뤄지고 있다. 대표적인 지방세인 취득세수가 부동산 경기 악화로 감소하는 등 세입 여건이 악화한 반면 채무는 빠르게 늘었다. 경기도의 채무 잔액은 2022년 3조 8362억 원에서 지난해 6조 1357억 원으로 3년 만에 약 60% 증가했다. 예산 대비 채무비율도 같은 기간 9.3%에서 12.9%로 3.6%포인트 상승했다.
전문가들은 세입 변동성이 큰 지방정부가 고정적으로 반복되는 지출을 늘릴 경우 경기가 나빠졌을 때 사업을 유지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경기도는 재정이 가장 풍부한 지자체 중 하나인데도 이런 상황이 됐다는 점이 특히 우려스럽다”며 “복지를 확대하더라도 소득이나 자산이 적은 계층에 재원을 집중하는 방식이 재정 효율성 측면에서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다만 경기도는 기본소득·기회소득 확대가 현재의 재정난을 불러왔다는 해석에는 반박하고 있다. 추미애 경기지사는 “복지를 늘렸기 때문에 재정난이 생긴 것이 아니다”라며 중앙에 세원이 편중된 현행 지방재정 구조가 근본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취득세수는 부동산 경기에 따라 줄어든 반면 반도체 등 도내 산업 성장에 따른 세수는 지방에 충분히 돌아오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정부 차원에서도 기본소득 성격의 사업이 확대되는 추세라는 점이다. 정부가 역점 추진 중인 농어촌 기본소득은 2027년 시범사업 종료 이후 전면 도입 여부가 정해지지 않았지만 대상 지역을 넓힐 경우 필요한 재정은 크게 증가한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에 따르면 농어촌 기본소득을 인구감소지역 69개 군 전체로 확대할 경우 매년 4조 9010억 원이 소요될 것으로 추산됐다.
여기에 문화체육관광부는 ‘예술인 기본소득’, 보건복지부는 ‘청년 참여소득’ 도입을 각각 검토하고 있다. 개별 사업의 필요성과 별개로 향후 기본소득 사업이 동시다발적으로 확대될 경우 재정 소요가 천문학적 규모로 불어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안 교수는 “재정에 대한 고려 없이 현금성 복지 지출을 늘리는 것은 결국 후세대에 부담을 넘기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