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티 토큰 서비스(Citi Token Services·CTS)의 가장 큰 차별점은 고객이 블록체인을 몰라도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기업이 기존 씨티 계좌에서 해외 송금을 지시하면 예금이 같은 가치의 예금토큰으로 자동으로 전환된다. 토큰은 블록체인 결제망을 통해 해외 법인이나 거래 상대방에게 실시간으로 전달되고 수취인의 씨티 계좌에는 다시 일반 예금으로 들어간다. 고객은 별도의 가상화폐 지갑을 만들거나 블록체인 기술을 이해할 필요 없이 평소처럼 송금 버튼만 누르면 된다. 토큰 발행부터 이전·정산까지 모든 과정은 금융망 뒤편에서 자동으로 이뤄진다.
씨티는 금융시장 마감 이후 해외 자회사에 긴급 유동성을 공급하거나 증권사의 마진콜(추가 증거금 요구)에 즉각 대응할 수 있는 게 강점이라고 보고 있다. 암브리시 반살(사진) 씨티그룹 글로벌 프로덕트 헤드 겸 유동성·디지털자산 사업 총괄은 “고객 입장에서는 기존 씨티 계좌와 동일한 방식으로 이용하기 때문에 블록체인이 뒤에서 작동한다는 사실조차 알 필요가 없다”며 “이 같은 익숙한 이용 방식이 새로운 결제 기술의 도입 장벽을 크게 낮춘다”고 설명했다.
기존 국가 간 송금은 통상 송금 은행과 중개 은행, 수취 은행을 차례로 거쳐야 한다. 국가별로 은행 영업시간과 휴일이 다른 데다 여러 금융기관이 거래 내역을 일일이 대조·확인해야 해 실제 결제가 완료되기까지 하루 이상, 많게는 2~3일 안팎까지 걸린다. 특히 금요일 오후나 공휴일 직전에 송금하면 시간이 더 지체됐다.
기업들은 이 같은 결제 지연에 대비해 해외 법인 계좌마다 필요 이상의 현금을 미리 쌓아둬야 했다. 하지만 예금토큰을 이용하면 필요한 지역에 필요한 만큼의 자금을 즉시 보낼 수 있다. 미국 금융시장이 문을 닫은 시간에 아시아나 유럽 법인으로 자금을 이동하거나 주말과 공휴일에 긴급 유동성을 공급하는 것도 가능하다. CTS는 미국 독립기념일인 7월 4일에도 정상적으로 가동됐다. 미 금융시장은 휴장했지만 토큰화 예금 결제망을 이용한 기업들의 자금 이동은 중단되지 않은 것이다.
반살 총괄은 “과거에는 자금이 어디에서 필요할지 예상해 미리 배치해야 했다”며 “이제는 필요할 때 자금을 즉시 이동시킬 수 있어 기업의 유동성 관리 방식 자체가 달라진다”고 말했다.
전 세계 90개국 이상에 진출해 있는 글로벌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씨티는 CTS의 지원 시장과 통화, 활용 사례를 단계적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반살 총괄은 “추가 시장과 통화로 서비스를 확대하는 것은 중요한 과제”라며 “한국 금융기관들과도 다양한 협력을 진행하고 있는 만큼 고객 수요를 바탕으로 서비스 확대 방안을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씨티의 예금토큰은 월가에서 진행 중인 온체인 금융의 한 단면이다. 월가의 주요 금융사들은 예금과 주식, 국채, 머니마켓펀드(MMF) 등 전통 금융자산을 블록체인으로 옮기고 있다. 차세대 금융 인프라 선점 경쟁에 나선 것이다. JP모건은 자체 토큰화 자산 플랫폼 키넥시스를 통해 토큰화한 예금과 국채·MMF 등을 지원하고 있으며 블랙록도 토큰화 펀드 시장을 확대하고 있다. 나스닥은 토큰화 주식을 기존 증권시장 안에서 거래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래리 핑크 블랙록 회장이 토큰화를 “금융 시스템의 낡은 배관을 교체하는 작업”이라고 빗댄 것도 이 때문이다.
온체인 전환이 가져오는 변화는 거래 속도를 높이는 데 그치지 않는다. 블록체인에는 자산의 소유권과 거래 상대방, 담보 상태, 규제 준수 여부 등이 구조화된 데이터로 축적된다. 금융사는 이를 바탕으로 거래 위험을 실시간으로 산정하고 필요한 담보와 유동성을 자동으로 배분할 수 있다. 향후 인공지능(AI) 에이전트 거래의 확대에도 온체인 금융이 필수다.
문제는 한국이다. 해외에서는 매일 조 단위 규모의 예금토큰 거래가 이뤄지고 있지만 한국 은행들은 이 같은 서비스를 아직 제공조차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금융계의 고위 관계자는 “국내에도 삼성과 현대차·SK·LG 같은 글로벌 대기업들이 있고 이들의 송금·결제 수요가 많다”며 “입법화 지연에 모든 시장을 해외 금융사에 다 뺏길 판”이라고 우려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