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소멸 대응과 로컬 상권 활성화 정책의 중심을 시설과 인프라에서 ‘사람’으로 옮겨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인구 증가율이나 관광객 수, 창업 점포 수보다 지역에 오래 남아 사업을 이어갈 사람을 키우고 그 지역만의 생활 방식과 공간적 매력을 만드는 일이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7일 서울경제신문과 만난 이승민 한국리노베링 대표와 이상창 세상상회 대표, 이창길 마계인천 대표 등 로컬 창업 전문가들은 지역 활성화의 출발점으로 각각 생활 플랫폼과 자립형 로컬 플레이어, 시대에 맞는 공간의 재해석을 제시했다. 접근 방식은 달랐지만 세 사람 모두 지원금이 끊긴 뒤에도 사업을 이어가며 지역에 필요한 것을 판단하고 실행할 주체가 있어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이승민 대표는 인구를 단기간에 늘리는 것을 지역소멸 대응의 최우선 목표로 삼는 것은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그는 “지역 인구가 3만 명에서 5만 명으로 급격히 증가하는 것은 현재의 인구 상황을 고려하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며 “실현 가능한 목표를 정하고 그 안에서 최대의 효과가 나타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가 강조한 것은 해당 지역에서 살고 싶어 하는 소수라도 실제로 정착할 수 있게 만드는 일이다. 하나의 예로 강원 고성군을 들었다. 고성군은 관광지로서 매력이 커 살고 싶어 하는 사람이 적지 않지만 이들이 들어가 살 주거 공간이나 일할 장소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이승민 대표는 “기본적인 플랫폼이 있어야 개인이 그 안에서 카페나 자영업을 시작하고 주민들도 행사를 열거나 거점으로 활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정착을 요구하기에 앞서 주거와 일·교류가 가능한 생활 기반을 먼저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역소멸대응기금도 건물 신축에 집중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승민 대표는 “현장에는 개발에 투입할 돈과 부지는 있지만 어떻게 살기 좋은 동네를 만들 것인지 논의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며 “지역이 어떤 이미지를 지향할지, 공간과 프로그램을 어떤 콘텐츠로 채울지를 먼저 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본 지역 사례도 소개했다. 일본 난조시는 ‘농업에 종사하는 삶’을 멋있고 매력적으로 보이게 한다는 마을 콘셉트를 세웠다. 시와정은 추운 기후에 맞는 고성능 단열주택을 보급하고 지역 건설업의 역량까지 키워 나가고 있다. 이승민 대표는 “지역을 관광지로 만드는 데만 집중하기보다 편안하게 생활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더 무게를 둬야 한다”고 말했다.
충주 관아골에서 활동하는 이상창 대표는 지역 상권을 바꾸는 핵심 자원으로 사람과 콘텐츠·자본을 꼽았다. 이 가운데 적어도 하나는 다른 지역과 구별될 만큼 매력적이어야 하고 무엇보다 그 매력을 오래 유지할 키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기획력과 실행력을 갖춘 사람이 동네에 애착을 갖고 장기간 관여한 것이 다른 도시재생 사례와의 차이점”이라고 설명했다.
관아골은 카페와 숙박 등 본업을 통해 먼저 자립할 구조를 만들고 부족한 인테리어 비용 등을 지원사업으로 보완했다. 지원금으로 사업을 시작한 뒤 자립을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을 수 있는 모델을 먼저 세운 뒤 공공 지원을 성장 수단으로 활용한 것이다. 관아골은 상인들의 자발적인 지역 활성화 노력에 힘입어 기존 한 곳도 없었던 동아리와 커뮤니티가 약 70개로 늘었다.
관아골에서 활동하는 로컬 활동가 약 20명은 모두 각자의 본업을 갖고 있다. 이들은 연중 80%는 자신의 가게와 브랜드를 지키는 데 쓰고 나머지 20%를 마켓과 동네 행사 같은 공동 프로젝트에 투입한다. 이상창 대표는 “로컬 활동가들은 각자의 본업이 먼저이고 그 위에 동네를 위한 부캐릭터를 얹는 구조”라고 말했다.
이창길 대표는 오래된 공간에 현재 사람들이 원하는 새로운 역할을 부여하는 데서 지역 활성화가 시작된다고 봤다. 그는 제주도의 200년 된 가옥을 독채 펜션으로 바꾼 경험을 바탕으로 2017년 고향인 인천 개항로로 돌아왔다. 당시 인천에는 개인이 운영하는 개성 있는 카페가 드물었다. 지역 주민에게 필요한 것이 또 하나의 프랜차이즈가 아니라 품질과 색깔을 갖춘 개인 카페라고 판단해 직접 공간을 만들었다.
그는 “유행을 따라가기보다 지역에 실제로 필요한 공간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오래된 병원이나 극장이 더 이상 선택받지 못한다면 시대에 맞는 새로운 역할을 부여할 수 있다”며 “오랜 세월이 깃든 건물과 공간은 그 누구도 따라 하지 못하는 우리 지역만의 자원이 된다”고 말했다. 오래된 건물에는 지역의 역사와 서사가 쌓여 있어 기존 모습을 살려 새로운 기능을 더하면 다른 지역이 복제하기 어려운 상권이 만들어진다는 설명이다.
이창길 대표는 정부의 재정 지원은 오히려 늘릴 필요가 있다고 봤다. 예산을 노리고 들어오는 사업자가 생긴다는 이유로 투자를 줄이기보다 실제로 지역에 기여할 사람을 더 정교하게 선별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다만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사업의 세부 기획까지 맡아서는 안 된다고 선을 그었다. 이미 지역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이 더 잘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드는 것이 정책의 역할이라는 것이다.
지역의 매력을 만드는 방식도 다수가 원하는 평균값만 고집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100명이 하나의 대안을 만들기보다 의견이 다른 3명씩 모여 33개의 조직을 만들고 각기 다른 아이디어를 내는 편이 낫다”며 “그래야 대한민국의 지역마다 서로 다른 컬러가 생긴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