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병원 응급실에서 근무한 직원이 100명 넘는 환자의 개인정보를 외부에 유출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병원 측은 ‘직원 개인의 일탈’이라고 선을 그었지만 1년 가까이 비정상적인 정보 접근을 포착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허술한 보안 관리가 도마에 오르고 있다.
6일 의료계에 따르면 한양대구리병원은 최근 홈페이지 사과문을 통해 “내부 직원이 업무상 접근 가능한 환자 개인정보를 병원 전산시스템에서 개인 휴대전화로 촬영해 외부인에게 무단 제공한 사실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유출은 2025년 6월부터 올해 4월까지 약 1년간 이어졌으며, 피해 규모는 총 109명에 달한다. 이 중 105명은 성명·병원 등록번호·성별·나이 외에 응급실 내원일시, 진료과, 주호소(주요 증상), 현병력 등이 유출됐다. 나머지 4명도 성명·등록번호·성별·나이 정보가 외부로 넘어갔다. 병원은 피해 환자들에게 개별 안내하고 개인정보보호위원회에 신고한 후 수사에 협조하고 있다.
다만 이번 사건이 전산시스템의 보안 결함이 아닌 직원 개인의 일탈이라는 입장이다. 병원 관계자는 “해당 직원에 대한 인사·징계 절차를 진행 중”이라며 “유사 사례 재발 방지 차원에서 직원 교육과 추가적인 보안 관리 강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 직원이 약 1년간 100명 넘는 환자의 정보를 반복적으로 열람·촬영했는 데도 이를 발견하지 못한 만큼 병원도 관리·감독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휴대전화 촬영을 완전히 차단하기 어려운 것과 비정상적인 접근을 장기간 포착하지 못한 것은 별개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대형병원의 환자정보 무단 열람과 유출은 끊이지 않고 있다. 2017년 감사원 조사에서 서울대병원 직원 161명이 고(故) 백남기 씨의 의무기록을 업무와 무관하게 열람하고, 한 직원이 일부 기록을 휴대전화로 촬영해 지인에게 전송한 사실이 확인됐다. 2023년 개인정보보호위원회 조사에서는 17개 대학병원이 환자 18만여 명의 처방정보를 제약사 영업사원 등에게 유출한 사실이 드러났다.
유사한 사고가 반복되는 배경에는 진료 편의를 우선해 설계된 병원 전산시스템의 광범위한 접근 권한이 있다. 응급실과 병동에서는 환자의 과거력과 검사·투약 정보를 신속히 확인하고 여러 진료과가 협진해야 하다보니 의료진에게 비교적 넓은 조회 권한을 부여한다. 문제는 시스템이 접속자의 신원은 확인해도 특정 환자의 기록을 열람할 업무상 필요까지 실시간 검증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부서 이동과 당직·파견 과정에서 불필요한 권한이 누적되거나 회수되지 않을 가능성도 존재한다. 특히 휴대전화로 모니터를 촬영하면 이동식저장장치(USB) 통제와 이메일 차단, 화면 캡처 방지 등 기존 정보 유출 방지 시스템을 우회할 수 있다. 전산망에는 정상 계정의 단순 열람으로 기록되고, 사진이 병원 시스템 밖에서 유통되면 추가 복제와 전달 여부를 추적하기도 어렵다.
해외에서는 이러한 기술적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접근 제한과 이상행위 탐지, 강도 높은 제재를 병행하고 있다. 미국 UCLA 헬스는 직원들의 환자 의무기록 무단 열람이 적발돼 2011년 보건부에 86만 5500달러의 합의금을 내고 3년간 독립 감시를 받았다. 영국은 업무상 이유 없는 환자정보 열람에 대해 징계는 물론 전문자격 박탈과 형사처벌까지 가능하다. 호주는 담당하지 않는 환자의 기록 반복 조회 등을 탐지해 조사한다. 응급상황에서는 기록을 열어주되 사유를 남겨 사후 감사하는 ‘브레이크 글라스(break glass)’ 방식도 병행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내부자 유출 위험을 낮추려면 이상 접근에 대한 선제적 모니터링과 반복적인 보안교육을 병행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강병익 한국병원정보보안협회 사무총장은 “휴대전화로 전산 화면을 촬영하거나 출력물을 반출하는 행위를 기술적으로 원천 차단하기란 어려운 데다 진료에 필요한 정상 열람과 오남용을 구분하기 쉽지 않다”며 “업무와 무관하거나 과도한 정보 열람을 선제적으로 모니터링하고 반복적인 교육을 통해 환자정보 누설이 중대한 직업윤리 위반이라는 인식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