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정오께 도심 속 마지막 판자촌으로 꼽히는 서울 강남구 구룡마을. 한낮 기온이 37도까지 치솟자 ‘화재 대피소’라고 적힌 얇은 천막에 주민들이 모여들었다. 살인적 무더위를 식혀주는 건 사실상 선풍기 다섯대가 전부. 소형 에어컨에서는 미지근한 바람만 나올 뿐이었다. 얼마전 이동식 냉방기가 설치되기는 했으나, 제역할을 하지 못했다. 주민들은 “찬 바람이 나와야 하는데”라며 연거푸 깊은 한숨만 내쉬었다. 강남구가 최근 세 차례 현장 점검 후 이동식 에어컨 3대를 지원했다고 밝혔지만, 실제 이행되지는 않았다.
올 1월 구룡마을을 덮친 화재로 집을 잃었다는 김 모 씨는 “낮 동안 달궈진 천막이 저녁에도 식지 않는다”며“햇빛을 받아 뜨거워진 냉방기는 꺼지기 일쑤”라고 말했다. 한 60대 주민은 “에어컨이 20년도 넘어 전기료도 걱정되고 불이 날까 무서워 틀지도 못한다”고 토로했다.
화재 대피소 바로 옆, 강남구가 지정한 무더위쉼터인 구룡마을 자치회관이 있었지만 상황은 녹록치 않았다. 충분한 휴식 공간이 확보되지 않는 등 수용 인원 자체가 많지 않은 탓이었다. 정오 무렵 좁은 공간에 이미 주민 10명가량이 머물러 추가 이용 여력이 크지 않아 보였다.
바깥의 주민들은 “같은 구룡마을 안에서도 거주 구역이 다른 사람들이 모여 있어 편하게 이용할 수 없다”며 손사래를 쳤다. 이 시설은 이날 네이버·카카오 지도 앱과 구청의 일반 무더위쉼터 안내 페이지에서도 확인되지 않았다.
보다 개방적인 공공시설은 거리와 생활권의 장벽에 가로막혔다. 같은 시각 구룡마을 초입에서 직선거리로 약 1㎞ 떨어진 개포1동 주민센터 민원실은 냉방시설과 소파, 정수기, 공용화장실을 갖추고 있었다. 다소 한산한 분위기였으나 더위를 피해 찾아온 구룡마을 주민은 보이지 않았다. 다소 거리가 있어 고령의 주민이 찾기가 쉽지 않은 탓이었다. 실제 취재진이 좁은 골목과 대로를 지나 걸어보니 신호대기를 포함해 편도 15분 이상이 걸렸다. 순식간에 온몸이 땀으로 젖었다.
구룡마을 70대 주민 장모 씨는 “주민센터가 시원해도 거기까지 가는 과정이 고역”이라며 “나 같은 노인이 어떻게 걸어가겠느냐”고 말했다. 또 다른 70대 주민은 “개포동은 잘 사는 아파트 주민들 동네”라며 “우리와 전혀 다른 사람들이 앉아 있어 그 뒤로는 가지 않는다”고 전했다.
지난해 기준 쉼터 위치를 토대로 접근성을 분석한 국립재난안전연구원 연구에서도 서울 취약계층 거주지역의 약 28%가 공공 무더위쉼터에 걸어서 5분 안에 닿기 어려운 것으로 파악됐다. 강남구는 은평·강서·서초구와 함께 접근 사각지대가 상대적으로 많은 지역으로 분류됐다. 연구진은 최근 한국방재학회를 통해 낸 ‘도시 폭염 대응을 위한 무더위쉼터 서비스 사각지대 및 취약성 분석’ 논문에서 이 같은 결론을 냈다.
이상은 숭실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쉼터 숫자가 전국적으로 충분해 보여도 실제로 주민들이 이용하지 않는 시설이 많다면 의미가 없다”며 “폭염 취약계층이 밀집한 지역일수록 이들이 생활권 안에서 이용할 수 있도록 운영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