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20여 년 전만 해도 오징어잡이 배가 드나들던 태국 동부 해안. 일명 동부경제회랑(EEC)이라 불리는 이 일대는 현재 비야디(BYD)를 비롯해 메이디(가전), 고션(배터리), GAC 아이온(전기차) 등 중국 업체들이 앞다퉈 진출해 현지 제조업 생태계를 장악했다.
태국에서 산업단지를 운영하면서 1500개 해외 기업을 유치한 아마타사(社)의 쓰쓰이 야스오 최고경영자(CEO)는 “중국 제조업은 이미 고도의 자동화가 이뤄지고 있다”며 “이 같은 생산방식이 태국으로 전파되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쓰쓰이 CEO는 30년 넘게 산단 운영 사업을 하면서 태국 제조업의 변화를 현장에서 지켜본 인물이다.
그가 체감하는 변화는 입주 기업 구성에서도 드러난다. 아마타가 운영하는 라용 아마타시티의 제조기업 482곳 가운데 중국·홍콩계 비중은 45.7%로 일본계(24.7%)를 앞섰다. 쓰쓰이 CEO는 “최근 5년 사이 고객의 70~80%가 중국계로 바뀌었다”며 “지난 30년간 1위 자리를 지켜온 일본을 밀어내고 있다”고 말했다.
태국 투자청(BOI) 접수 기준으로도 중국 기업의 투자 확대는 뚜렷하다. 투자 신청 건수는 2021년 108건에서 지난해 982건으로 9배 넘게 늘었고 투자 신청액은 지난해 약 25조 원에 달했다.
쓰쓰이 CEO는 “요즘은 태국 물가가 일본보다 비싸게 느껴질 정도”라며 “값싼 인건비를 좇아 오던 시대는 이미 지났다”고 말했다. 중국 기업들도 값싼 노동력보다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태국에 온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이는 일본과 중국의 태국 진출 방식이 갈리는 지점이기도 하다. 일본은 좌측통행에 따른 우핸들 차량 시장을 발판으로 도요타·혼다 등이 완성차·부품 공장을 세우며 태국을 ‘아시아의 디트로이트’로 키웠다. 중국은 여기에 자동화 설비와 산업용 소프트웨어, 통신망, 물류 시스템까지 얹었다. 일본이 생산기지를 만들었다면 중국은 그 생산기지를 움직이는 생태계까지 가져오는 셈이다. 쓰쓰이 CEO가 이를 ‘차이니즈 뉴 웨이브’라고 부르는 이유다.
그가 특히 주목한 대목은 현지화다. 공장만 짓고 떠나는 게 아니라 그 공장에서 일할 사람까지 직접 키운다. 아마타 산업단지 전용 초등학교에는 중국 기업의 요청으로 중국어 수업이 개설됐고 라자망갈라공과대(RMUTI) 전기차 교육센터는 중국계 교육회사의 자본이 들어가면서 배터리·구동계·정비까지 다루는 실습 과정으로 격이 달라졌다.
투자 결정 속도에서도 차이는 두드러진다. 쓰쓰이 CEO는 “중국·미국·유럽·일본 기업에 부지를 제안하면 거의 95%는 중국 기업이 받아들인다”고 말했다. 아마타는 중국계 부동산 기업과 합작법인을 세워 중국어로 투자 상담부터 계약까지 진행하는 창구도 따로 마련해뒀다.
중국 기업이 기술을 현지 생산에 접목하는 방식은 촌부리 스마트공장에서도 드러난다. 메이디의 제조 노하우에 중국 화웨이·차이나유니콤의 네트워크 기술, 태국 통신사 AIS의 현지 인프라가 결합됐다. EEC는 통관 절차 디지털화 작업도 중국 알리바바와 진행 중이며 알리바바 산하 물류사 차이냐오의 스마트물류 네트워크가 그 기반이 됐다.
쓰쓰이 CEO는 이 같은 실행 속도가 한국 기업과의 차이로 이어진다고 봤다. 그는 “한국 기업들이 스마트팩토리를 태국 현지에 적용하고 싶어도 한국 본사와 협의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며 “스마트팩토리나 5G, 산업용 소프트웨어 같은 기술을 따로 수출하기보다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하나의 플랫폼으로 묶어 현지에 가져가는 방안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