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상 실패와 미국 식품의약국(FDA) 허가 불발 등 악재가 겹치며 국내 바이오기업 대표들이 잇따라 회사 주식 매입에 나서고 있다. 투자 심리가 크게 위축되자 기업가치 제고와 책임 경영 의지를 보여주기 위한 행보다. 다만 단기적으로는 효과가 있을 수 있지만 궁극적으로 주가가 반등하기 위해선 임상 데이터와 사업개발 성과 등 구체적인 성과가 따라와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4일 제약·바이오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국내 바이오기업 15곳에서 대표들이 회사 주식을 매입했다. 리가켐바이오를 비롯해 엔젠바이오, 셀리드, 메지온, 지아이이노베이션, DXVX, 툴젠, 진매트릭스, 프롬바이오, HLB, 에이비온, 펩트론, 알지노믹스, 코오롱티슈진, 와이바이오로직스의 대표들이 주식 매입 행렬에 나섰다. 이는 올해 들어 월별 기준으로 가장 많은 규모다.
세부적으로 이규호 코오롱 부회장 등 경영진은 TG-C 미국 임상 3상 실패 후 2억 6000여 만원 규모의 코오롱티슈진 주식을 지난달 27일 장내 매수했다. 전승호 코오롱티슈진 대표는 공식 홈페이지 영상을 통해 “다른 사내이사들도 준비가 되는 대로 매수에 동참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간암 신약 리보세라닙의 미국 식품의약국(FDA) 허가가 재차 불발되자 진양곤 HLB그룹 의장도 같은 달 20~21일간 계열사 주식 총 1억 4000여만 원을 매수했다.
이 외에도 최호일 펩트론 대표가 지난달 9일 대전에서 열린 포럼에서 “터제(터제파타이드)는 포함돼 있지 않다”고 발언한 후 회사 주가가 하한가를 기록하자 14일 10억 6000만 원 규모의 회사 주식을 장내 매수했다. 펩트론은 미국 일라이릴리와 장기지속형 약물 전달기술을 공동 연구 중으로, 시장에서는 마운자로(성분 터제파타이드)가 연구 대상에 포함돼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 외에도 뚜렷한 악재가 없었음에도 주가가 장기 하락하며 다수의 경영진이 주식 매입 나섰다.
바이오 산업을 둘러싼 투자 심리가 경색되며 대표들의 주식 매입은 늘어나는 추세다. 6월에는 메지온, 셀리드, DXVX, 인벤티지랩, 와이바이오로직스, 티움바이오, 에이비온, HLB테라퓨틱스, 씨지인바이츠, 파로스아이바이오 등 10개사 대표들이 회사 주식을 매입했다. 이보다 앞선 5월에는 네오이뮨텍, 에이비온 등 2곳에 그친 것으로 집계됐다. 지난달 KRX 헬스케어 지수는 2월 5700선보다 40% 가까이 내린 3400선을 기록했다. 지난해 7월 4200선과 비교해도 20%가량 내린 수치다.
이처럼 대표들이 직접 나서 주식 매입에 나선 것은 자금 조달이 어려워지는 데 더해 인재 유치에도 차질이 생길 수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서울의 한 바이오기업의 임원은 “직원들의 스톡옵션 행사가가 현재 주가보다 2배가량 높아 직원 사기는 물론 업무 효율에 영향을 미칠 것 같아 고민이 많다”고 토로했다. 인투셀의 경우 한때 우리사주조합의 취득 원가보다 회사 주가가 낮아지는 일도 발생했다. 에이비온은 대표의 회사 주식 매입에도 불구하고 5월과 6월 주가 하락으로 반대매매가 발생하며 취득 주식 수가 다시 줄어드는 일도 벌어졌다.
전문가들은 경영진의 회사 주식 매입이 단기적으로 책임 경영 의지를 보여줄 수 있지만 결국 주가 회복은 임상 데이터와 허가 절차, 사업 성과에 달렸다고 지적했다. 이승규 한국바이오협회 상임부회장은 “경영진의 회사 주식 매입은 시장 안정과 주주 소통을 위한 책임경영이라는 점에서 긍정적”이라면서도 “임상과 허가, 사업개발 과정에서 구체적인 성과와 계획을 시장에 꾸준히 제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