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23조 원까지 불어난 농협 부실대출을 정리하기 위해 지역농협의 부실채권(NPL) 펀드 투자를 허용한다. 부동산 시장이 회복될 때까지 매각 시간을 확보해 채권 회수 가능성을 높이겠다는 취지다.
2일 관가에 따르면 농림축산식품부는 농·축협이 NPL 펀드에 투자할 수 있도록 관련 고시를 손질한다. 농·축협이 매각한 부실채권을 기초자산으로 한 부동산형 수익증권(펀드)을 농식품부 장관의 승인을 거쳐 매입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다.
개정안이 시행되면 부실채권을 보유한 농·축협은 해당 채권을 펀드에 넘기고, 매각대금의 70%를 후순위 수익증권에 다시 투자한다. 펀드 자금의 나머지 30%는 외부 은행과 공제기관이 선순위로 댄다. 농협중앙회와 채권을 팔지 않은 다른 농·축협은 참여하지 않는다.
자산운용사는 회계법인의 실사와 감정평가를 거쳐 인수 대상과 가격을 정한다. 발행되는 수익증권은 별도의 신용평가도 받는다. 채권 회수액이 매입가격에 못 미치면 매각 농·축협의 후순위 투자금부터 손실이 반영되고, 외부 선순위 투자자는 자금을 우선 회수한다.
농협 관계자는 “손실이 발생하면 부실채권을 판 농·축협이 먼저 책임지는 구조”라며 “부실채권을 펀드에 넘겨 연체율을 낮추고 부동산 시장이 회복될 때까지 청산 기간을 확보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농협에는 이미 부실채권을 매입·정리하는 농협자산관리회사가 있다. 하지만 여러 농·축협이 하나의 부동산이나 사업장에 함께 돈을 빌려준 공동대출은 채권자가 많고 이해관계가 복잡해 기존 방식으로 처분하기 어렵다는 게 농식품부의 설명이다.
정부가 제도 개선에 나선 것은 농협의 부실여신이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송옥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농협중앙회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역농협과 지역축협 등 회원조합의 금융사업을 합산한 농협 상호금융의 고정이하여신은 2021년 말 4조 1717억 원에서 올 6월 말 22조 9718억 원으로 5.5배 증가했다. 고정이하여신은 원금 회수 가능성이 낮아 자산건전성이 ‘고정’ 이하로 분류된 대출이다.
같은 기간 농협 상호금융 전체 연체율은 0.88%에서 5.22%로 뛰었다. 기업대출 연체율은 7.98%까지 올랐다.
농협 상호금융은 지난해와 올 상반기 농협자산관리회사에 매각 당시 장부잔액 기준 총 4조 1930억 원의 일반 담보부채권을 넘겼다. 그런데도 고정이하여신은 지난해 말보다 올 6월 말 2조 3328억 원 증가했다. 기존 부실을 정리하는 사이 새로운 부실이 계속 유입된 셈이다.
부실의 중심에는 권역외 대출과 부동산 공동대출이 있다. 권역외 대출은 지역농협과 지역축협 등이 주된 영업지역 밖에서 취급한 대출이다. 해당 지역의 차주와 사업장에 관한 정보가 부족해 대출 심사와 사후관리가 상대적으로 취약해질 수 있다.
농협 상호금융의 권역외 대출은 2021년 16조 6802억 원에서 올 6월 28조 328억 원으로 68% 늘었다. 같은 기간 연체율은 2.09%에서 12.86%로 치솟았다. 농협 상호금융 전체 연체율의 약 2.5배다.
부동산 공동대출의 부실은 더 심각하다. 상업시설 담보 공동대출 연체율은 2021년 말 1.31%에서 올 6월 27.98%로 뛰었다. 연체잔액은 558억 원에서 1조 4842억 원으로 26배 넘게 불어났다. 토지담보 공동대출 연체율도 24.60%에 달했다.
농협중앙회는 저금리 시기에 상가·숙박시설 등 수익형 부동산 공동대출이 크게 늘어난 뒤 금리 상승과 내수 침체가 겹치면서 부실이 확대됐다고 설명했다. 온라인 소비 확대로 상가 공실이 늘고 담보가치가 떨어지면서 차주의 상환 능력이 약해진 데다 경매·공매를 통한 대출금 회수도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다만 NPL 펀드는 이미 발생한 부실을 장기간 정리하기 위한 사후 대책인 만큼 새 부실을 막기 위한 여신 관리도 병행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024년 정부는 고위험 공동대출에 대한 중앙회 사전심사를 의무화하고 부동산·건설업 대출 한도와 충당금 적립 기준도 강화했다.
구정한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상호금융기관은 본래의 설립 취지에 맞게 운영되도록 과도한 수익성·성장성 추구를 억제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