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가 울창하게 우거져 하늘을 가릴 정도의 일명 ‘숲세권’ 환경에서 사는 노년층은 우울증 증상을 겪을 가능성이 더 낮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공원이나 강·바다 같은 수변 공간보다도 집 주변의 나무가 촘촘하게 조성된 환경이 장기간 정신건강에 더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정서장애 분야 국제학술지 저널 오브 어펙티브 디소더스(Journal of Affective Disorders)에 게재된 연구에 따르면 호주 뉴사우스웨일스대 건강한 뇌 노화 연구소와 호주가톨릭대 공동 연구진은 시드니에 거주하는 70~90세 성인 1031명을 최대 12년 동안 추적 조사해 거주 환경과 우울 증상의 관계를 분석했다.
연구진은 참가자들의 주거지를 기준으로 반경 1㎞ 안의 환경을 분석했다. 나무 캐노피(나무 우듬지가 서로 맞닿아 하늘을 덮는 정도)를 비롯해 공원 면적, 바다·강·호수 등 이른바 ‘블루 스페이스’, 생활 편의시설 접근성, 상업시설 비중, 대기오염(PM2.5·이산화질소) 등을 종합적으로 비교했다.
분석 결과 가장 일관된 효과를 보인 것은 나무 캐노피였다. 오랜 기간 나무가 많은 동네에서 생활한 노년층일수록 우울 증상 점수가 유의미하게 낮았다. 연구진은 풍부한 나무 환경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는 것이 노년기 정신건강을 보호하는 데 도움이 될 가능성을 보여주는 결과라고 설명했다.
반면 일반적으로 정신건강에 도움이 될 것으로 여겨졌던 공원이나 강·바다 같은 수변 공간, 생활 편의시설 접근성, 대기오염 수준 등은 다른 요인을 함께 고려한 분석에서는 우울증 감소와 뚜렷한 연관성을 보이지 않았다.
일부 결과는 예상과 달랐다. 공원 비율이 높은 지역이나 나무가 더 늘어난 지역, 이산화질소 농도가 낮아진 지역에서 오히려 우울 증상이 증가하는 것처럼 나타난 것이다. 하지만 연구진이 추가 분석한 결과 이러한 현상은 이사를 한 참가자들에게서만 관찰됐다. 새로운 환경으로 옮긴 뒤 우울 증상이 악화된 사례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여 환경 자체의 효과로 해석하기는 어렵다고 연구진은 설명했다.
연구진은 “이번 연구가 단순히 공원을 늘리는 것보다 주거지 주변의 나무 캐노피를 확대하는 도시 설계가 노년층의 정신건강 증진에 더 효과적일 수 있음을 시사한다”고 밝혔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전 세계 60세 이상 인구의 약 20%는 정신질환이나 신경계 질환을 경험하며, 우울증은 노년기 삶의 질 저하와 인지기능 감소, 신체질환 악화에도 영향을 미치는 대표적인 질환으로 꼽힌다.
연구진은 “장기간 나무 캐노피가 풍부한 환경에서 생활한 사람일수록 우울 증상이 적은 경향이 확인됐다”며 “고령화 사회에서 도시의 나무를 늘리는 정책은 정신건강을 개선하는 중요한 수단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다만 “주거 환경이 정신건강에 미치는 영향은 개인의 생활환경과 거주지 이동 여부 등 다양한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만큼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