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가 다시 공장을 짓기 시작했다. 인공지능(AI) 혁명이 거세질수록 제조업의 가치는 점점 더 커지고 있다. 미국은 반도체와 배터리·전기차에 이어 조선업까지 자국으로 불러들이고, 일본은 반도체 부활을 위해 TSMC 생산라인을 유치했고, 중국은 AI와 휴머노이드 로봇을 앞세워 제조 강국의 입지를 다지는 중이다. 서비스와 플랫폼이 산업의 중심이 될 것이라는 전망도 있었지만 현실의 흐름은 전혀 다르게 전개되고 있다. 반도체와 데이터센터·전력망 없이는 AI는 존재할 수 없다. 로봇과 자율주행, 바이오와 우주산업도 제조업의 토대에서 도약이 가능하다. AI 혁명의 본질은 제조업을 대체하는 게 아니라 제조업을 다시 강하게 만드는 데 있다.
최근 이재명 대통령의 ‘샌프란시스코 AI 선언’은 대한민국 제조업의 경쟁력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장면이었다. 글로벌 AI 기업들이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국내 기업과 앞다퉈 손을 맞잡은 것은 세계 최고 수준의 제조 생태계를 높이 평가해서였다. AI 경쟁은 이제 산업 생태계를 얼마나 신속히 구축하고 연결하느냐를 다투는 경쟁으로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보스턴다이내믹스의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도 AI만으로는 한 발짝도 뗄 수 없다. 반도체와 배터리, 정밀 부품, 전력망, 수많은 협력 기업들이 하나의 생태계를 이룰 때 비로소 강력한 AI 경쟁력을 갖는다. AI는 코드만으로 산업이 될 수 없다. 미래 산업의 승패는 결국 제조 생태계에서 갈린다.
대한민국의 성장 공식을 다시 세워야 한다. 압축 성장이 선진국을 따라잡는 전략이었다면 이제는 산업의 생산방식 자체를 새로 설계할 때다. 저성장과 저출생·고령화가 동시에 진행되는 지금 노동과 자본을 더 투입하는 방식만으로는 지속 가능한 성장을 기대하기 어렵다. AI를 제조업 현장에 빠르게 확산시키는 일이 중요하다. 제조업을 버리고 AI 산업으로 이동하는 게 아니라 세계 최고 수준의 제조 경쟁력에 AI를 결합해 산업 전반의 부가가치와 경쟁력을 끌어올려야 한다.
AI 시대의 산업 전략은 특정 업종 지원을 넘어 국가 산업의 판을 다시 짜는 장기 프로젝트가 돼야 한다. 반도체와 AI 데이터센터, 피지컬 AI는 산업 현장으로 AI를 확산시키고 대한민국의 제조 역량을 업그레이드할 핵심 기반이다. 정부가 추진하는 3대 메가 프로젝트도 지역 개발이나 투자 유치에서 더 나아가 AI와 제조업을 연결해 산업 혁신을 촉진하는 국가 프로젝트가 돼야 한다. 반도체와 AI 데이터센터, 피지컬 AI 거점이 하나의 생태계로 연결되고 인력과 전력·용수·데이터가 이를 뒷받침할 때 우리 제조업이 미래 산업의 성장 플랫폼으로 도약할 수 있다.
중국의 위협적인 질주는 각별히 경계해야 한다. 최근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가 상하이 증시 시가총액 1위에 오른 것은 특정 기업의 성공이라기보다는 국가 차원의 산업 전략에 시장이 높은 가치를 부여한 결과다. 국가가 위험을 분담하고 기업이 혁신에 집중한 결과가 오늘의 CXMT다. 반면 우리는 여전히 규제와 이해관계에 발목이 잡혀 있다. 지금은 기업을 통제하는 규제가 아니라 혁신의 속도를 높이는 지원이 필요하다. 산업 규제도 원칙적으로 허용하고 예외만 제한하는 네거티브 방식으로 과감히 전환해야 한다.
1960년 8월 1일 창간사에서 “경제의 안정·부흥을 통한 국민경제의 자립화”를 외치며 ‘한강의 기적’을 이끈 서울경제신문은 66년이 흐른 지금 ‘초격차 제조 강국’ 도약을 화두로 던진다. 이제 우리의 과제는 AI를 기반으로 한 산업 혁신으로 대한민국을 AI 대전환 시대의 글로벌 선도 국가로 우뚝 서게 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세계 최고 수준의 연구 ·기술 인재가 뒷받침돼야 한다. 기업이 필요한 인재를 제때 쓰지 못하고 세계 인재가 한국을 선택하지 않는다면 AI 경쟁에서 뒤처질 것은 자명하다. 더 늦기 전에 제조 강국의 핵심 경쟁력인 초격차 기술 인재 확보를 위해 노동·교육 개혁을 완수해야 한다. 노동 제도는 기업이 기술과 인력을 신속하게 배치할 수 있도록 탈바꿈시키고 교육 시스템은 정답을 암기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하는 역량을 키워야 한다. 실패를 용인하고 도전을 장려하는 연구 환경, 해외 우수 인재를 끌어들이는 개방성, 창의성을 높이는 교육 혁신이 미래 제조 경쟁력을 좌우할 것이다.
대한민국은 자원이 없으면 기술을 배웠고, 기술이 부족하면 사람을 키웠으며, 시장이 좁으면 세계로 나갔다. 시대가 바뀔 때마다 생산방식을 혁신하며 새로운 경쟁력을 만들어왔다. 이제 AI는 선택이 아니라 산업의 기본 인프라가 되고 있다. AI와 제조업을 따로 볼 시대는 끝났다. 대한민국의 다음 50년은 AI 기업을 몇 개 보유하느냐가 아니라 AI로 제조업을 얼마나 빠르게 혁신하느냐에 달렸다. 그것이 AI 시대 대한민국의 새로운 성장 공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