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귀자의 ‘모순’과 정대건의 ‘급류’를 잇는 역주행 한국 소설이 등장했다. 유래혁(32) 작가의 첫 장편소설 ‘수족관’이다. 올 여름 출판 시장은 ‘수족관’ 열풍으로 뜨겁다. 이 책은 교보문고의 7월 4주간(22~28일) 종합 베스트셀러 순위에서 1위에 올랐다. ‘모순’과 ‘급류’처럼 20대의 호응이 두드러졌다. 교보문고에 따르면 ‘수족관’ 구매 독자 중 20대 여성이 22.6%로 가장 많았다. 2023년 12월 말에 출간된 ‘수족관’은 2년 반이 지난 올해 5월부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중심으로 입소문을 타며 인기를 얻었다. 책을 찾는 독자들이 크게 늘면서 지금까지 14쇄를 찍었다.
최근 서울 마포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유 작가는 “출간 후 홍보조차 하지 않은 책을 3년 가까운 시간 동안 읽어준 독자들의 지원 사격 덕분”이라고 말했다. 작가는 책을 낸 뒤에도 두려운 마음이 들어 독자들의 후기마저 외면했다고 한다. 그러다 한 독자가 소설의 배경인 일본 오키나와의 추라우미 수족관에서 책과 함께 찍어 보낸 메시지를 뒤늦게 확인하고 나서야 독자들의 반응을 마주하게 됐다. 그는 “독자들에게 감사한 마음만 갖고 있을 수 없다는 생각에 책을 알려보기로 결심했다”면서 “‘수족관’의 예고편 같은 영상을 SNS에 올렸는데 많은 호응을 얻으며 입소문을 타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SNS에 올린 영상의 조회 수는 무려 600만 회에 육박한다.
여름 감성을 물씬 풍기는 표지도 무더위 속 ‘수족관’의 인기를 견인한 요소로 꼽힌다. 일러스트레이터 성률 작가가 그린 표지에는 파란 하늘에 피어나는 뭉게구름 아래로 교복을 입은 두 남녀가 자전거를 타고 있는 풍경이 펼쳐진다. 유 작가는 “성률 작가와 함께 책을 읽고 가장 좋아하는 장면을 그려보자고 했다”며 “자전거는 ‘스스로 선다’는 뜻과 ‘버려지는 존재’라는 이중적 의미를 담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 작가의 작품이지만 소설의 등장인물과 배경은 일본이다. 소설의 집필과 퇴고 작업도 오키나와에서 했다. 작가는 “작품을 통해 내가 가져보지 못한 기억과 살아보지 못한 삶을 경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실제로 살아온 한국의 지명이나 언어, 현실과 일정한 거리를 두니 훨씬 자유롭게 글을 쓸 수 있었다”고 말했다.
작가는 ‘수족관’을 “우리가 학창 시절에 가지고 싶었던 기억”이라고 표현했다. 소설은 보육 시설에서 자란 열일곱 살 고등학생 류이치가 먼저 보육시설에서 도망쳐 나온 아카리를 만나 겪게 되는 일들을 그린다. 각자의 어두운 과거를 가진 둘은 함께 오키나와의 너른 바다를 보러 가는 꿈을 꾼다. 작가는 “특정한 과거 때문에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마치 바다에서 잡혀 수족관으로 옮겨진 물고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자신이 있는 곳이 수족관이 아닌 척할수록 더 수족관스럽게 변해버리는 아이러니를 써보고 싶었다”고 밝혔다. 또 “수족관에서 오래 산 생물들은 다시 바다로 방출됐을 때 적응하지 못해 폐사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며 “그럼에도 누군가는 커다란 사랑 때문에 바다에 닿기도 한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했다”고 덧붙였다.
대학에서 회화를 전공하고 사진작가로 활동하다 소설을 쓴 그는 “어떤 장면을 이미지로 먼저 떠올리고 이미지들을 연결해서 스토리를 만들어가는 방식으로 작업한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수족관’의 책장을 덮으면 한 편의 영화를 본 느낌이다. 작가는 “영화·드라마 등 영상화 논의가 진행 중”이라고 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