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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 전략도 철학도 없는 나라

26.07.2026 1분 읽기

나흘 전 이재명 대통령 주재로 열린 ‘부동산 대토론회’에서 김영도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 고가·고액 주택담보대출에 추가 부담금을 물리자고 제안했다. 일주일여 전에 있었던 금융위원회 주최 토론회 내용의 재탕이지만 그 무게가 달랐다. 대통령 앞에서의 발표였기 때문이다.

거시건전성 관리부담금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달았지만 이 아이디어는 주담대판 ‘부유세’다. 다른 설명이 필요 없다. 값비싼 아파트는 대출이자 외에 10억 원당 최소 1000만 원을 더 내라는 게 핵심이다.

생각해보자. 개인이 30억 원을 대출받았다고 해도 이는 전체 가계대출의 ‘0.0000025%’다. 이런 식이라면 시장에서 수조~수십조 원의 여신을 받는 대기업은 대한민국 경제를 흔들 수 있으므로 대출 자체를 막아야 한다. 금융연은 정부 개입의 논거로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언급한 헌법 119조 2항을 거론했지만 이보다는 개인과 기업의 자유와 창의(119조 1항)가 먼저다.

논리도 근거도 빈약한 설익은 방안을 대통령이 있는 자리에서 꺼냈다는 점에서 당국의 철학 부재가 느껴진다. 금융의 공공적 성격을 감안해도 규제는 시장에 발을 딛고 있어야 한다. 새 정부 들어 이 같은 기본 전제가 흐릿해지고 있다. 금융위원회가 언제부터 “제가 제시한 이슈여서 (부담금 규모와 적절성에 대해) 학계에서 논의된 바 없다”는 안까지 끌어와야 할 정도가 됐나.

되짚어보면 가격별 ‘2억·4억·6억 원’ 주담대 제한만 해도 소득·상환 능력과 무관하게 전 국민의 대출을 틀어막는다. 기한도 없다. 재건축과 재개발 같은 공급은 외면한 채 금융 규제만 쏟아낸 결과는 주거 사다리 붕괴와 2030세대의 분노다. 대출은 간단하고 직관적이어야 한다. 약발이 다할 때마다 나오는 땜질식 규제에 은행원도 뭐가 어떻게 되는지 모르고 있다.

전세대출 죽이기도 마찬가지다. 서민을 생각하면 백번 양보해도 빌라와 연립의 전세대출은 늘리는 것이 옳다. 규제에 규제를 얹는 방식은 시장을 더 망가뜨리고 국민의 자유만 침해한다.

실제로 시장의 원칙과 기조가 깨진 게 한두 번이 아니다. 앞서 이 대통령은 ‘고신용자=고금리’라는 신개념(?)을 들고나왔다. 새 정부의 잔인한 금융 프레임에 채무조정은 당연한 권리가 돼버렸다. 선진국에서도 연체 채무자 보호와 재기 지원을 한다는 논리지만 한국처럼 정부가 5년마다 대규모 빚탕감을 해주는 곳은 없다. 은행은 남의 돈, 예금주의 돈으로 대출을 한다. 정말로 빚을 갚을 여력이 없는 이들은 금융사들이 자체적으로 선제 채무조정을 확대하는 것이 맞지만 예외적인 사안이 아니라면 금융사가 빌려준 돈은 끝까지 받아내야 한다. 그것이 금융의 원칙이다.

금융그룹 회장 3연임 제한 발상도 그렇다. 청와대의 입맛에 맞는지는 몰라도 이는 지주 이사회와 주주를 무시하는 처사다. 제이미 다이먼 JP모건체이스 최고경영자(CEO)는 2005년부터 21년째 그룹을 이끌고 있다. CEO 임기는 시장과 주주가 정하는 것이지 정부가 감 놔라 배 놔라 할 사안이 아니다. 포용금융 최고책임자 도입 역시 보여주기식 편의주의 행정이다. 은행권 사회 공헌 사업 실태조사는 감독 당국의 정체성에 대한 의구심까지 들게 한다.

당국이 대출 조항과 금액, 금융사 지배구조 등 기술적 사안에 매몰되다 보니 한국은 금융 비전이 없는 나라가 됐다. 반도체와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피지컬 AI 등 1500조 원 규모의 메가 프로젝트를 얘기하지만 이를 뒷받침할 구체적 장기 금융 조달 방안과 계획은 안 보인다.

국내 은행들은 외환위기 이후 정부가 갈아놓은 밭 위에서 성장해왔다. 글로벌 첨단산업 경쟁에서 대한민국이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지금의 판을 어떻게 재편하고 키울 것인지와 초대형 산업 지원을 위한 메가뱅크 같은 보다 근본적인 논의 및 대안이 절실하다. 무너진 서민금융 생태계 복원과 지방금융 합종연횡, 보험사 구조조정도 정부의 큰 그림 아래에서 가능하다.

온체인금융과 디지털자산, 에이전틱 AI는 이제 현실이다. 외환위기 이후 30년 가까이 된 금융정책을 밑바닥부터 다시 세우는 작업이 필요하다. 지난주 일본 정부는 은행의 출자 규제 완화와 의결권 행사 등이 담긴 ‘신금융전략’을 내놓았다. 한국도 변화해야 한다. 이대로는 대한민국 금융에 미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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