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65) SK그룹 회장이 노소영(65) 아트센터 나비 관장에게 이혼 재산 분할금으로 9440억 원을 지급하라는 파기환송심 판결이 나왔다. 2019년 노 관장은 최 회장의 이혼 소송에 응하겠다며 반소를 냈는데 요구한 SK 주식의 당시 가치는 1조 3900억 원 수준이었다.
양측의 재상고 여부는 결정되지 않았다. 다만 파기환송심 판결이 기존의 대법원 판결 취지를 따른 만큼 재상고심에서 결론이 바뀔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전망이 제기된다.
25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등법원 가사1부(재판장 이상주)는 24일 두 사람의 이혼소송 파기환송심에서 “최 회장은 노 관장에게 9440억 원을 지급하라”고 선고했다. 재판부는 최 회장이 판결 확정 다음 날부터 지급을 완료할 때까지 연 5%의 지연이자도 내라고 명했다. 이는 연 472억 원, 하루에 1억 3000만 원 수준이다.
SK 주식 분할 대상 포함…“가사·양육·대외활동 등 기여”
재판부는 최 회장의 SK 주식을 부부 공동재산으로서 재산 분할 대상에 포함했다. 혼인 기간 최 회장의 경영 활동으로 주식 가치가 크게 상승했고 노 관장도 가사와 양육은 물론 SK그룹 관련 대외 활동을 통해 재산 형성·유지에 기여했다고 봤다. 재판부는 “해당 주식은 혼인 기간 중 최 회장 명의로 취득한 재산으로 부부 모두가 형성과 가치 유지·증가에 기여했다고 인정된다”고 설명했다.
SK 주식의 포함 여부를 두고 1심과 2심의 판단은 엇갈렸다. 1심은 SK 주식을 최 회장의 특유재산으로 판단해 분할 대상에서 제외한 바 있다. 특유재산은 혼인 전부터 보유한 고유재산으로 원칙적으로 재산 분할 대상이 아니다. 반면 항소심은 혼인 기간과 재산 형성 시점·과정 등을 종합해 노 관장의 기여를 인정하고 해당 주식을 분할 대상에 포함한 바 있다.
주식 가액 2년 전 기준…노태우 비자금 산정 제외
주식 가액은 항소심 변론 종결일인 2024년 4월 16일을 기준으로 산정했다. 최근 SK 주가가 급등하며 어느 시점의 주가를 기준으로 재산 가치를 평가할지가 쟁점으로 부각된 바 있다. 환송 전 항소심 변론 종결일인 2024년 4월 16일 당시 SK 주가는 16만 원대였다. 하지만 파기환송심 변론 종결일인 지난달 26일에는 81만 5000원대로 상승했다. 최 회장이 보유한 주식은 1298만 주 가량으로 주당 16만 원 적용시 약 2조 760억 원이지만 주당 81만 5000원 적용하면 10조 5750억 원 수준이다.
재판부는 재판상 이혼이 확정된 뒤 재산 분할을 청구하더라도 분할 대상 재산과 가액은 원칙적으로 이혼소송의 사실심 변론 종결일을 기준으로 정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례를 근거로 들었다. 재판부는 “주가가 큰 폭으로 상승했지만 그 상승에 최 회장의 경영적 기여가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볼 수 없다”며 “이혼이 확정된 후 주식 처분 여부에 따라 발생한 이익이나 손해까지 모두 전 배우자와 나눠야 한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전했다.
재판부는 항소심에서 반영됐던 노 전 대통령 측의 300억 원 지원금은 노 관장의 기여도 산정에서 제외했다. 재판부는 노 전 대통령이 비자금을 SK 측에 전달했다고 해도, 이를 노 관장 측 기여로 볼 순 없다고 했다. 앞서 노 관장 측은 SK그룹 재산 형성 과정에서 기여도를 인정해달라며 모친 김옥숙 여사가 작성한 904억 원의 비자금 메모를 제출했다.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 300억 원이 사돈인 최종현 전 SK 회장에게 넘어가 태평양증권 인수나 SK 그룹의 경영활동에 사용됐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해당 자금이 실제 존재하더라도 불법 자금에 해당하는 만큼 재산 분할 과정에서 노 관장 측의 기여로 평가할 수 없다고 판단한 바 있다.
혼인 파탄 이전 공동재산의 형성·유지와 관련해 이미 증여된 재산도 분할 대상에서 빠졌다. 환송 전보다 노 관장의 몫이 소폭 낮아졌다. 재판부는 “부부 공동재산의 상당 부분은 혼인 기간 중 형성·취득된 자산”이라며 “쌍방의 협력으로 이룩한 공동재산을 공평하게 분배하기 위해 환송 전 항소심 변론 종결일 이후 최 회장 보유 주식 가치가 큰 폭으로 상승한 점을 참작했다”고 밝혔다.
최 회장 66.7%, 노 관장 33.3%…주가 상승 감안
재산 분할 비율은 최 회장 66.7%, 노 관장 33.3%로 정했다. 1심은 최 회장 60%, 노 관장 40%로, 2심은 최 회장 65%, 노 관장 35%로 분할비율을 정한 바 있다. 환송 전 항소심 변론 종결일 이후 SK 주가가 크게 오른 사정을 재산 분할 비율을 정할 때 고려됐다. 공동재산을 보다 공평하게 나누기 위한 조치라는 설명이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재산분할 소송이 일찍 마무리됐으면 노 관장의 몫이 줄어들었을 수도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다만 최 회장이 SK 주식을 그대로 보유하도록 하고 노 관장에게 돌아갈 몫 가운데 부족한 금액은 현금으로 지급하도록 했다. 재판부는 해당 주식이 최 회장의 SK그룹 경영권과 지배력의 기반이라는 점 등을 고려해 현금 분할을 명령했다. 이에 따라 판결이 확정되더라도 SK그룹 지배구조에 미칠 직접적인 영향은 제한적일 것으로 보인다. 재판부는 “최 회장이 보유한 SK 주식은 회사 경영권 내지 지배권의 근거가 되는 측면이 있는 점, 분할대상 재산의 명의와 형태, 취득 경위, 이용 상황 등을 고려해 재산분할비율에 따른 노 관장 몫 중 부족한 금액은 최 회장이 현금으로 지급하는 것으로 정했다”고 설명했다.
재벌총수 장남과 대통령 딸의 만남…2017년 이혼조정 시작
고(故) 최종현 SK 선대회장의 장남인 최 회장과 노 전 대통령의 딸인 노 관장은 미국 시카고대 유학 중 만나 인연을 맺었다. 1988년 결혼해 재벌총수의 장남과 대통령의 딸의 만남으로 ‘세기의 결혼’이라는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당시 결혼식은 청와대 영빈관에서 노 관장의 은사인 이현재 당시 국무총리의 주례로 성대하게 치러졌다.
양측의 소송은 최 회장이 언론을 통해 혼외자를 공개하면서 시작됐다. 최 회장은 2015년 12월 세계일보에 ‘내연녀와 혼외자가 있다. 현재 부부 생활을 지속하기 어렵다’는 취지의 A4용지 3장 분량 편지를 보냈다. 부부 생활이 순탄치 않았음을 세상에 알린 셈이었다. 당시 혼외 딸은 6살이었다.
최 회장이 2017년 7월 노 관장을 상대로 협의 이혼을 위한 이혼 조정을 신청했지만 2018년 2월 양측이 합의에 이르지 못해 정식 소송 절차가 시작됐다. 최 회장이 제기한 이혼 소송이 진행 중이던 2019년 12월 노 관장이 재산 분할을 요구하는 맞소송을 냈다. 노 관장은 당시 “희망이 안 보인다. 원하는 행복 찾아가게 하겠다”는 글을 남겼다. 노 관장은 이혼에 응하겠다며 반소를 내면서 위자료 3억 원과 최 회장이 보유한 SK 주식 중 42.29%(650만 주)를 지급하라고 요구했다. SK 주식 650만 주의 당시 가치는 1조 3900억 원 수준이었다. 이후 재판 과정에서 요구 주식 비율을 50%로 확대했다.
양측이 파기환송심 선고에 불복하면 대법원에 재상고할 가능성이 있다. 다만 파기환송심 판결이 기존의 대법원 판결 취지를 따른 만큼 재상고심에서 결론이 바뀔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전망이 제기된다.
파기환송심 선고 후 최 회장 측 대리인은 취재진에 “최 회장은 지금까지 과정에서 많은 분께 심려를 끼친 데 송구하게 생각한다”며 “판결문을 면밀히 검토한 뒤 판결에 대한 구체적 입장을 밝힐 것”이라고 했다. 최 회장은 이날 법원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최 회장은 미국 캘리포니아주 우드사이드에서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와 만찬 회동을 가졌다.
노 관장 측 대리인은 판결에 대한 입장을 따로 밝히지 않고 법원을 나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