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005930) 가 AMD의 6세대 고대역폭메모리(HBM4) 우선 공급자 선정에 이어 대량 공급을 본격화할 경우 HBM4 수요는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구글·인텔 등 주요 빅테크 실적 발표에서 인공지능(AI) 인프라 수요를 확인한 상황에서 AMD AI 인프라를 주요 빅테크에 공급하기 시작하면 서버 성능을 좌우하는 HBM4의 중요성도 커지기 때문이다. 배경훈 부총리 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리사 수 AMD 최고경영자(CEO)와 깜짝 회동하며 삼성전자를 비롯한 한국 기업들과 AMD의 협력을 지원 사격했다.
수 CEO는 23일(현지 시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개최한 ‘AMD 어드밴싱 AI 2026’ 기조연설을 통해 AI 서버 랙 시스템인 ‘헬리오스’를 공개했다.
헬리오스는 AI 연산을 전담하는 그래픽처리장치(GPU) ‘인스팅트 MI455X’ 72개와 시스템 전체를 제어하는 중앙처리장치(CPU) ‘에픽(코드명 베니스)’ 18개를 철제 구조물인 랙에 통합한 시스템이다. 헬리오스에는 AMD의 GPU·CPU뿐 아니라 네트워킹·소프트웨어가 모두 담겨 있다. AMD는 올해 1월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26’에서 헬리오스를 선보였고 이날 구체적인 성능을 공개했다.
AI 랙은 대규모언어모델(LLM)과 같은 AI 모델을 개발하고 구동하는 핵심 인프라다. 그동안 레노버·델·HPE 등이 AMD CPU를 토대로 AI 서버를 만들어 팔았지만 헬리오스는 AMD의 여러 AI 칩을 모두 넣어 랙 단위 묶음으로 공급하게 된다. AI가 스스로 추론하고 이행하는 에이전틱 AI 시대가 도래하면서 CPU가 중요해졌고, AMD는 자사의 CPU를 중심으로 AI 인프라를 판매하기로 한 것이다. AMD가 GPU ‘루빈’과 CPU ‘베라’를 결합한 엔비디아의 랙 시스템인 ‘베라 루빈 NVL72/NVL144’와 정면 승부를 선언한 셈이다.
AMD는 이미 오픈AI, 앤트로픽, 마이크로소프트(MS), 메타, 오라클 등 주요 하이퍼스케일러(대규모 컴퓨팅 인프라 운영사)와 초대형 AI 개발사를 헬리오스 고객사로 확보했다. 헬리오스는 3분기 말 출하를 시작해 4분기부터 본격적으로 공급된다. 이날 기조연설 무대에 오른 사친 카티 오픈AI 인프라 총괄은 “올해 말부터 헬리오스를 대규모로 배치하기 시작해 내년 내내 이를 늘려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앤트로픽은 최대 2GW(기가와트) 규모의 헬리오스 시스템 도입을 위한 파트너십을 맺었다.
특히 주목할 부분은 3분기 말 양산하는 헬리오스에 삼성전자 HBM4가 탑재된다는 점이다. 삼성전자는 올해 2월 업계 최초로 HBM4를 출하했고 한 달 뒤 수 CEO의 방한을 계기로 AMD와 우선 공급 협약을 맺었다. 바트 워커 삼성전자 DS부문 메모리사업부 상무는 이날 전시관에서 간담회를 열고 삼성이 2007년 AMD 라데온 HD 2000 시리즈에 GDDR4를 공급한 뒤로 20년간 협력 관계를 이어오고 있다면서 이는 3월 HBM4 우선 공급으로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삼성이 지난해 5세대 HBM3E를 AMD에 공급한 데 이어 HBM4에서도 주요 협력사 지위를 확보하게 된 것이다.
삼성이 AMD에 HBM4를 본격적으로 공급하게 되면 HBM 쌍두마차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000660) 는 AI 랙 경쟁에서도 메모리 기업으로 입지를 더욱 굳힐 수 있다. 엔비디아 AI 랙인 ‘베라 루빈’에 두 기업의 HBM4가 공급된 데 이어 AMD까지 가세하면 HBM 부족이 심화되고 이는 장기 계약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국내 메모리 기업 입장에서는 엔비디아 의존을 낮추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엔비디아 GPU인 ‘루빈’ 1개에는 288GB( 기가바이트) HBM4 메모리가 연결되는 반면 AMD GPU ‘ MI455X‘에는 50% 더 많은 432GB가 탑재돼 공급량도 늘어난다.
이날 AMD 행사장에는 독자 파운데이션 모델 등 소버린 AI(AI 주권) 정책 총책임자인 배 과학부총리가 깜짝 등장하기도 했다. 수 CEO는 직접 헬리오스를 비롯한 AMD 신제품을 소개했고 배 부총리는 AMD 기술을 활용한 피지컬 AI(물리적 세계에 AI를 결합한 기술), 클라우드 서버 등을 둘러봤다. 애초 예정된 시간은 30분이었지만 망고부스트·모레 등 국내 기업 부스 등을 한 시간여 둘러본 뒤 행사장을 빠져나갔다. 그는 “엔비디아 중심 생태계에서 AMD가 비중을 넓혀가는 과정에서 한국 기업들이 이러한 개방형 생태계에 참여하는 것은 의미가 있다”며 “한국이 반도체에 강점을 갖고 있으니 AMD와 협력을 하면서 한국 나름의 독자적인 생태계를 만들고 글로벌 기업 참여를 유도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