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광주 5개 자치구(옛 광주광역시) 일대에 시행되는 정부의 자율주행 실증을 앞두고 스타트업들이 고성능 그래픽처리장치(GPU) 절벽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스타트업들은 자율주행 차량 탑재용 및 인공지능(AI) 모델 개발용 GPU가 모두 부족한 상태에서 사업 준비 막바지 단계를 밟는 중이다. 이들 사이에선 정부와 대기업이 도와 AI 인프라 확보 창구를 뚫어주지 않으면 실증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고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23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광주 자율주행 실증 도시 사업에 참여하는 라이드플럭스와 오토노머스에이투지는 광주 사업 자율주행 차량에 부착할 고성능 에지(현장 배포) AI 칩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자율주행차 안에는 외부 네트워크 연결 없이 자율주행 모델을 구동하는 AI 칩이 설치된다. 운전 인지 및 판단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차량의 두뇌인 셈이다. 업계에서 널리 쓰이는 자율주행용 AI 칩은 엔비디아의 ‘드라이브’ 시리즈로 고사양의 ‘토르’와 일반 사양의 ‘오린’, 두 제품으로 구성돼 있다. 현재 두 스타트업은 기존에 쓰던 오린으로 광주 사업용 차량 부품을 제작하는 중이다.
광주 사업은 국토교통부가 추진 중인 대규모 자율주행 프로젝트다. 옛 광주광역시 일대(500.97㎢)에 자율주행 택시 200대를 투입하고 내년 중 완전 무인 자율주행을 구현하는 게 핵심 목표다. 자율주행 모델 개발 기업으로는 현대자동차, 라이드플럭스, 오토노머스에이투지 등 3곳이 참여한다. 계획대로라면 올해 말 도시 외곽부터 자율주행 택시 운영을 시작해 내년엔 도심 지역까지 확장한다.
광주 사업을 앞두고 스타트업들이 토르를 확보하려는 이유는 자율주행 모델 개량에 따른 최신 컴퓨팅 자원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라이드플럭스와 오토노머스에이투지는 기존에 룰베이스 자율주행 모델을 개발했다. 룰베이스란 사전에 입력한 규칙과 알고리즘을 바탕으로 모델이 운전 상황을 판단하고 제어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 두 회사는 엔드투엔드(E2E) 방식의 비중을 늘리기 시작했다. E2E는 AI 모델이 도로 이미지, 지도, 운전 시 습득한 센서 데이터 등을 학습해 운전 중 스스로 판단을 내리고 차량 제어 방식을 결정한다. 국토부도 광주 사업의 목표 중 하나로 기업의 E2E 기술력 제고를 꼽았다. 운전대를 쥔 AI의 현장 판단력이 더 중요해진 만큼 연산 성능이 우수한 AI 인프라 자원이 필요해진 것이다.
사업 형태 차이에 따른 필요성도 있다. 기존 국내 스타트업들의 자율주행 실증은 정해진 구간을 반복해 이동하는 셔틀 수준에 그쳤다. 그러나 광주 사업은 도시에서 일반인 승객을 태우고 목적지를 찾아가는 택시 서비스를 제공한다. 운전 성능 및 안전 유지 측면에서 AI 모델이 실시간으로 계산해야 할 요소가 많아졌다.
문제는 토르를 사고 싶어도 스타트업들에겐 제품 구매 길이 막혔다는 점이다. 엔비디아는 정책상 토르를 엔비디아와 긴밀한 사업 협력을 맺은 일부 기업들에만 유통하고 있다. 스타트업과 같은 소규모 업체들은 시험 개발용 제품만 구매할 수 있고 차량에 탑재할 물량을 직접 살 방법이 없다. 반면 광주 사업에 함께 참여하는 현대차(005380) 는 수백 장 단위의 토르를 확보했다고 알려졌다.
한 자율주행 업체 관계자는 “광주 사업은 3개 기업이 자율주행 역량을 겨루는 무대인데 에지 AI 자원 측면에서 이미 대기업과 스타트업 사이 출발선 격차가 벌어졌다”고 평가했다.
스타트업들의 또 다른 고민거리는 AI 모델 개발용 GPU 부족이다. 이들은 AI 모델의 데이터 학습 용도로 활용하는 데이터센터용 GPU가 충분치 않다고 호소한다. 일부 스타트업은 가용 GPU 자원을 끌어모으느라 개인용 제품 (RTX 시리즈) 까지 개발 작업에 가져다 쓰는 실정이다.
특히 업계에선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독자 AI 파운데이션 모델(독파모) 사업 등 과기정통부 사업에만 정부 소유 GPU를 몰아준다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국토부는 올해 10월 엔비디아의 구세대 GPU인 H100을 라이드플럭스와 오토노머스에이투지에 100장씩 제공할 예정이다. 반면 독파모 사업의 경우 사업 참여 1개 컨소시엄당 신형 GPU인 B200을 735장씩 지원받고 있다. 업계에서는 자율주행 업체에도 B200 수준의 신형 GPU가 200장씩은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국토부도 광주 사업을 위해 더 많은 GPU 자원을 배정받고 싶어 하나 과기정통부가 쉽사리 물량을 양보하지 않는다고 전해진다.
또 다른 자율주행 업체 관계자는 “스타트업들이 GPU가 부족한 환경에서 최적의 자율주행 기능을 개발하기 위해 밤낮없이 매진하고 있다”면서도 “정부나 광주 사업에 동참하는 현대차가 엔비디아와 협상력을 발휘해 GPU 확보 창구라도 마련해줬으면 한다”고 호소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