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이란의 긴장감이 다시 고조되면서 8차 석유제품 최고가격제 고시를 앞둔 정부의 셈법이 복잡해졌다. 6월 휴전 양해각서(MOU)가 체결될 때까지만 해도 최고가격제 폐지가 머지 않은 것으로 전망됐으나 호르무즈 해협에 이어 홍해 봉쇄 가능성까지 거론되면서 오히려 시행 강도가 더 세질 수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미국 이란 전쟁이 장기화할 경우 정유사에 지급해야 할 손실보상금도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올해 경제성장률 3%를 제시한 정부의 목표에도 경고등이 들어왔다.
이재명 대통령은 21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원래 계획에 의하면 지금쯤 석유 제품 최고가격을 더 내리거나 제도를 폐지했어야 하는데 오히려 더 강화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앞서 정부는 지난달 26일 7차 최고가격을 고시하고 휘발유와 경유, 등유 공급 최고가격을 직전 대비 리터(ℓ)당 150원씩 인하한 바 있다. 인하된 ℓ당 최고액은 휘발유 1784원, 경유 1773원, 등유 1380원 등이다. 이에 따라 2000원대 초반이었던 전국 주유소 휘발유·평균 가격도 1800원대로 내려섰다.
문제는 당시 최고가격 인하를 이끌었던 국제 원유 가격이 다시 오르고 있다는 점이다. 산업통상부에 따르면 정부가 석유 제품 최고가격을 인하하기 직전인 지난달 25일 국제 브렌트유 가격은 배럴당 75달러로 6월 첫째 주(95달러) 대비 20% 넘게 떨어졌다. 정부는 당시 “국제유가 하락분을 선제적으로 반영해 최고가격 전격 인하를 결정했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하지만 미국이 14일부터 이란에 대한 해상 봉쇄를 재개한다고 발표하면서 브렌트유 가격은 다시 80달러대로 상승했다. 20일 기준 9월 인도분 브렌트유 선물 가격은 직전 거래일보다 3.12% 급등한 90.85달러에 거래를 마치며 6월 11일 이후 약 한 달 만에 다시 90달러선을 넘긴 상황이다. 지난달 말 배럴 당 64달러 수준이었던 두바이유 가격도 79달러까지 치솟았다. 국제유가만을 지표로 삼으면 8차 최고가격을 인상할 수밖에 없는 셈이다. 구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도 이날 국무회의에서 “유가가 오르는 상황이라는 점을 감안해 8차 최고가격을 결정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국내 물가 상승 우려는 최고가격 인상의 발목을 잡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7차 최고가격 인하 효과에 힘입어 2%대로 내려온다고 해도 8차 제도 시행 때 최고가격을 인상하면 다음 달에는 상승률이 재차 3%대에 올라설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5월 3.1%, 6월 3.2% 등으로 두 달 연속 3%를 넘긴 상황이다. 이 대통령은 “중동 상황이 다시 악화하고 있고 조기 종전·휴전 가능성도 뚜렷하게 보이지 않고 있어서 국내 물가에 미치는 영향을 잘 챙겨야 할 것 같다”고 주문하기도 했다. 이에 시장에서는 이달 31일까지인 유류세 인하 조치를 연장할 수 있다는 가능성도 제기된다.
한편 호르무즈 해협 봉쇄 및 홍해 봉쇄 우려에도 국내 원유 도입에는 큰 차질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산업부에 따르면 7월과 8월에 도입되는 원유는 전년 평균 대비 110% 이상 확보된 것으로 집계됐다. 9월 도입 원유 물량은 전년 대비 90% 수준이며 7~8월 중 확보되는 나프타는 전년 평균 수준이다. 다만 원유 및 나프타 수급 차질이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은 만큼 산업계에서는 원유 도입 다변화 지원, 나프타 수입 단가 차액 지원, 비축유 스와프 제도 등 정부가 이달 1일 원유 자원안보 위기 경보 하향과 함께 종료했던 각종 지원 정책을 재개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산업부 관계자는 “홍해에서 현재까지 정상 운행이 이뤄지는 것으로 확인됐다”며 “(문제가 생기면) 수에즈 운하 등 다른 대체 수단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구 부총리는 “전쟁 상황을 9월 이후까지 내다보고 원유와 나프타를 더 확보하려는 노력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주사기, 의료용 장갑 등 40여 개 중점 관리 품목에 대해서는 신호등 체계를 도입하고 모니터링을 강화한다는 계획이다. 재고가 2주 이내로 남은 비상 품목은 빨간색 경고등으로, 재고가 2주 이상 1개월 이내인 품목은 주황색 등으로, 재고가 각각 2~3개월, 3개월 이상인 품목은 각각 노란색, 초록색 등으로 표시하는 식이다. 구 부총리는 “이번 석유류 가격 인상에 따라 전체적으로 점검한 결과 현재 빨간 불이나 주황 불이 켜진 품목은 없다”며 “안심하지 않고 공급망을 세심히 살피겠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