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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련공의 ‘3요’

21.07.2026 1분 읽기

직장 초년생의 ‘3요’가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상사 업무 지시에 “이걸요? 제가요? 왜요?”라고 되묻는다는 것이다. 세태 풍자로 소비됐지만 본질은 노동의 값을 묻는 질문이었다.

이제 같은 질문을 나이 든 노동자들이 던진다. 수십 년간 쇳물과 불꽃을 견디고 기계를 다뤄온 숙련공들이다. 정부와 기업이 수십 년간 대한민국 제조업을 떠받쳐온 이들의 몸에 밴 기술을 인공지능(AI) 학습 데이터로 만들겠다고 나섰기 때문이다. 현장 숙련공에게는 낯설고 난데없는 상황이다.

첫 번째 질문 “이걸요?”부터 보자. 가뜩이나 현장 일손이 달리는 숙련공으로서는 충분히 되물을 만하다. 답은 “이걸 지금 할 수밖에 없다”다. 서울경제신문이 20일 보도한 ‘골든타임 놓치는 뿌리기업 AX’ 기획에서 확인됐듯이 뿌리산업의 인력 사정이 절박하다. 뿌리산업 종사자 74만 4543명 가운데 50대 이상이 27만 3699명, 36.8%에 이른다. 30대 미만은 10.3%에 불과하다. 60대 이상과 거의 같은 수준이다. 뿌리산업에서 제조업 전체로 넓혀도 이런 흐름은 같다.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2024년 제조업 취업자의 39.7%가 50세 이상이었고 30세 미만은 11.5%에 그쳤다. AI 학습 데이터의 원천인 암묵지, 즉 사람의 몸에 쌓인 지식이 숙련공의 은퇴와 함께 사라지고 있는 현실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마음이 급할 수밖에 없다. 산업통상부가 4월 공고한 제조 암묵지 기반 AI 모델 개발 사업에는 한 달도 안 돼 143개 컨소시엄이 몰려 4.77대1의 경쟁률을 기록했을 정도다.

다음 질문인 “제가요?”에 대한 답도 나와 있다. 암묵지 데이터화는 숙련공 참여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공장에 아무리 많은 센서를 달고 설비 가동 이력, 제조 과정 등을 기록으로 남기더라도 암묵지를 완전히 대체할 수 없다. 기록지에 남아 있는 온도와 압력 같은 계량 데이터는 반쪽짜리 정보다. 숙련공의 현장 감각과 상황 판단이 빠져 있어서다. 데이터화 과정에서 숙련공이 몸으로 시연하고 말로 풀며 AI를 직접 가르쳐야 비로소 가치 있는 온전한 학습 데이터가 된다.

문제는 마지막 질문인 “왜요?”다. 이에 대한 답은 선뜻 나오지 않는다. 현재 제조 현장에는 AI가 결국 자신의 일자리를 대체할 것이라는 우려에 거부감이 상당하다. 현장 작업자들의 반대로 인공지능 전환(AX) 사업이 중단되는 사례도 나온다. 마음이 불편한 숙련공에게서 좋은 데이터가 나올 리 없다. 참여의 깊이가 곧 데이터의 품질이기 때문이다.

암묵지 데이터화 사업이 여기저기서 시작됐지만 숙련공의 적극적인 참여 유도 방안은 잘 보이지 않는다. 수십 년의 시간을 들여 체화한 지식의 가치를 무엇으로 잴 것인가라는 사회적 논의 자체도 드물다. AI 시대의 데이터 대가 논쟁은 그간 작가의 글과 언론사의 기사 등 창작물을 놓고 벌어진 게 대부분이다. 노동자들이 몸으로 익힌 숙련 지식에 대한 가치 평가는 제대로 이뤄진 적이 없다.

월급을 받고 일하며 쌓은 노하우이니 회사의 자산이라는 시각이 있을 수 있다. 반면 몸으로 시연하고 말로 풀어 AI를 가르치는 일은 기존 업무와 구분되는 별도의 노동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어느 쪽이 맞는지 정해진 답은 아직 없다.

숙련의 가치를 어떻게 평가할지는 사업과 현장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분명한 것은 숙련공의 기여가 제대로 인정돼야 기업도 좋은 데이터를 얻는다는 사실이다. 현장의 반대에 부딪혀 AX 사업이 멈출 때 손해는 고스란히 기업 몫이다. 오랜 경력을 제대로 대접하는 일이 곧 데이터 품질에 대한 투자인 셈이다. 숙련의 가치를 어떻게 평가할지에 대해서는 정부가 기업 현장에서 함께 고민해야 한다.

숙련공은 데이터 공급원이기 이전에 평생 기술로 산업을 지켜온 장인이다. ‘제가 왜 이걸 해야 합니까’라는 물음에 산업이 답을 내놓을 때 제조 AI는 가장 필요한 지식을 얻을 수 있다. 숙련에 대한 평가는 제조 AI 뒤에 붙일 보완책이 아니다. 제조 AI가 출발하기 위한 전제 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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