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통상과 외교를 담당하는 두 수장이 이번주 미국 측 카운터파트너와 직접 머리를 맞댄다. 2000억 달러 규모의 대미투자 프로젝트를 둘러 싼 한미 양국의 치열한 협상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한미원자력협정 개정, 쿠팡 사태 해결 방안 등이 폭넓게 테이블 위에 오를 전망이다. 24일(현지시간) 종료되는 미국의 글로벌 10% 관세 효력과 그 후속조치도 한미 통상 ·외교 협상의 변수가 될 전망이다.
19일 관계부처에 따르면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은 23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리는 한미 조선협력센터 개소식 참석차 미국을 방문할 예정이다. 행사에는 김 장관은 물론 HD한국조선해양, 삼성중공업, 한화오션 등 조선3사의 최고 경영진이 참석할 예정이다. 미국 측에서는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부 장관이 참석할 것으로 알려졌다. 두 사람이 공식석상에서 만난 것은 5월8일 열린 한·미 조선 파트너십 이니셔티브 양해각서(MOU) 체결식 이후 76일 만이다.
이번 행사 전후로 김 장관과 러트닉 장관이 별도의 비공개 양자 회담을 가질 가능성이 크다는 게 관가 안팎의 전망이다. 특히 한국의 1호 대미 투자 프로젝트를 막판 조율하는 것이 시급한 과제다. 실제 미국은 여러 채널을 통해 “1호 투자 선정 과정이 너무 더디다”는 불만을 보내오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도 이날 한 방송에 출연해 “미국에서 보내 온 투자 리스트를 정밀 분석 중”이라며 “8~9월 대미 투자 1호가 현실화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투자 검토가 길어지면서 당초 알려졌던 에너지·핵심광물 분야뿐 아니라 반도체 산업에 대해서도 미국 측의 투자 요구가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러트닉 장관은 9일 마이크론이 미국 뉴욕주 클레이타운에 건설 중인 팹의 콘크리트 타설식에 참석해 “경쟁사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미국으로 불러 생산 시설을 짓게 하고 싶다”고 밝힌 바 있다. 정부는 일단 반도체팹은 대미 투자프로젝트와 무관하다고 선을 긋고 있지만 최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메모리 기업들이 영업이익률 80%를 넘길 정도로 막대한 자금을 미국 기업들로부터 벌어들이면서 어떤 식으로든 투자 압박은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재계의 한 고위 관계자는 “삼성과 SK가 한국에 4800조 원을 투자한다는 소식이 이미 미국에 들어가 2000억달러(약 300조원)는 너무 작은 숫자가 돼버렸다”며 “미국이 한국을 압박할 구실을 찾고 있고 그 중 하나가 쿠팡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미 쿠팡 문제는 대미 투자 협상의 핵심 변수가 됐다는 게 한미 양국 내부의 공통 인식이다. 미국 정가에서 쿠팡에 대한 우리 정부의 조치를 ‘미국 기업 차별’ 문제로 분류하고 있는 탓이다. 실제 최근 미 연방하원 법사위원회에서는 한국 정부가 미국 기업 쿠팡에 대해 ‘전 정부적 차원의 공격’을 벌이고 있다는 주장을 담은 보고서를 공개하는가 하면 백악관에서도 “한국 정부가 미국 테크 기업을 차별적으로 표적 삼고 있는 상황에 깊이 우려한다”는 메시지가 나왔다.
강경화 주미대사 역시 최근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참석 차 일시 귀국해 “쿠팡 문제는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오래가는 이슈”라고 진단하기도 했다. 강 대사가 일시 귀국해 참여한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는 기존 구성원에 더해 구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과 주병기 공정거래위원장, 산업부 관계자 등이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양자회담 등의 사안도 없는데 대사가 일시 귀국한 것도 이례적이지만 NSC에 경제 관료가 참석하는 것 역시 흔치 않은 일이다.
외교가에 따르면 강 대사는 19일 미국으로 복귀했으며 조 장관은 21~23일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리는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서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과 만나 양국 현안을 논의할지 주목된다
일단 정부는 쿠팡에 대한 조치가 특정 기업을 겨냥한 차별적 대응이 아니라 국내법에 따른 절차라는 점을 미국 정부와 의회에 설명하는 한편 대미투자 프로젝트는 쿠팡 문제와 별개로 추진한다는 방침이다.김태황 명지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는 “개별 기업의 로비가 국가간 통상 문제에 영향을 끼치는 선례를 남기는 것은 위험한 일”이라며 쿠팡 문제가 공식 통상 의제로 부상하지 않도록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