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러시아와 호주를 중심으로 곡물 공급망을 추가 확보한다. 기후변화와 농촌고령화 등에 따라 식량안보에 대한 우려가 커지자 선제 대응에 나서는 것이다. 러시아에서는 콩·옥수수 농장을 확대하고 호주에서는 밀 생산 거점 확보를 추진하기로 했다.
15일 관계부처에 따르면 농림축산식품부와 한국농어촌공사는 러시아 아무르주·연해주와 서호주 제럴턴·퀴나나를 대상으로 해외 곡물 공급망 구축 계획을 연말까지 마련한다. 국내 기업의 수요를 토대로 농장과 사일로(저장고), 가공시설, 항만을 잇는 사업 모델을 설계할 예정이다. 구체적인 농장 면적과 투자 규모, 부지 확보 및 착수 시점은 마스터플랜(사업 밑그림) 확정 뒤 참여 기업·현지 정부와 협의한다.
이번 사업은 정부가 해외 농장을 직접 조성하는 대신 현지 진출을 희망하는 기업을 지원하는 방식이다. 기업이 희망하는 국가와 품목을 조사한 뒤 전문가를 투입해 농지 확보와 시설 배치, 투자비, 현지 법·제도상 위험 등을 분석한다. 현지 정부와의 업무협약과 기반시설 지원 방안도 함께 마련한다.
정부는 2009년부터 해외 농지 확보와 생산 기반 조성을 지원해왔다. 다만 현지 생산이 실제 국내 반입으로 이어지려면 저장·물류 기반까지 갖춰야 한다는 판단 아래 지원 범위를 공급망 전반으로 넓히고 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2024년부터 기업의 진출 계획을 미리 설계하는 사전마스터플랜 사업을 도입했다. 지난해 키르기스스탄에 이어 올해는 러시아와 호주를 대상으로 생산부터 저장·가공·운송까지 잇는 공급망 구축안을 마련한다.
구체적으로 러시아에서는 이미 진출한 국내 기업의 농장과 유통망을 확대하는 데 중점을 둔다. 추가 농지 확보와 사일로·가공시설 확충을 지원해 생산부터 항만 선적까지 잇는 공급망을 구축할 계획이다.
호주에서는 축산에 집중됐던 국내 기업의 진출 분야를 밀 생산으로 넓힌다. 현지 밀 재배지와 전용 사일로, 선적시설을 연결하고 한국의 디지털 육종 기술을 접목하는 방안도 검토된다. 북반구에서 이상기후나 전쟁 등으로 생산 차질이 발생할 경우 남반구에서 대체 물량을 확보할 수 있는 거점을 마련한다는 구상이다.
정부가 해외 조달망 확충에 나선 것은 국내 생산만으로 곡물 수요를 충당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2023년 국내 곡물자급률은 22.2%에 그쳤다. 밀과 옥수수 자급률은 각각 1.1%, 0.8%로 쌀을 제외한 주요 곡물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는 구조다.
수입처마저 일부 국가에 집중돼 있어 공급 충격에도 취약하다. 2024년 밀·옥수수·대두 수입액 가운데 미국·호주·브라질·캐나다 등 상위 4개국이 차지한 비중은 94.4%에 달했다. 농촌경제연구원은 수입국 다변화를 30개 농식품 공급망 지표 가운데 개선 정도가 가장 낮은 항목으로 평가했다.
해외에서는 곡물 생산지와 저장·항만을 함께 확보하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중국 국영 곡물기업 COFCO는 2024년 브라질에서 대두·옥수수 1700만 톤을 수출했으며 이 중 80%가 중국으로 향했다. 브라질 산투스항에는 완전 가동 시 대두·옥수수 등을 연간 1450만 톤 처리할 수 있는 곡물터미널도 구축했다.
한정훈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은 “평상시부터 새로운 수입국과 품종을 발굴하고 현지 유통망을 확보해 공급 충격을 분산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