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비상계엄 이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체포영장 집행을 방해한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진 윤석열 전 대통령에게 징역 7년의 실형이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계엄 583일 만에 나온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첫 대법원 판단이다. 윤 전 대통령이 현재 피고인으로 재판을 받고 있는 형사 사건 8건 가운데 첫 상고심 판단이다. 윤 전 대통령은 상고심 선고를 서울고법 법정 안에서 휴대전화 중계로 들었다.
대법원 3부(재판장 이흥구·주심 이숙연 대법관)는 9일 오후 특수공무집행방해,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윤 전 대통령에게 징역 7년을 선고한 원심판결을 확정했다.
윤 전 대통령은 12·3 비상계엄 수사 초기인 작년 1월 대통령 경호처 직원을 동원해 공수처의 체포영장 집행을 막은 혐의로 작년 7월 내란 특검팀에 의해 재판에 넘겨졌다. 계엄 선포 전 국무회의 외관만 갖추려 일부 국무위원만 소집해 회의에 참석하지 못한 국무위원 9명의 계엄 심의권을 침해한 혐의도 적용됐다. 계엄 해제 후 한덕수 전 국무총리와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부서(서명)한 문서에 의해 계엄이 이뤄진 것처럼 허위 선포문을 만들고, 이후 이를 폐기한 혐의도 있다.
대법원은 윤 전 대통령에 대한 공수처의 내란죄 수사권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헌법 84조는 ‘대통령은 내란 또는 외환의 죄를 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재직 중 형사상의 소추를 받지 아니한다’고 정하는데, 이에 윤 전 대통령 측은 공수처가 직권남용죄 수사를 개시할 수 없고, 관련 범죄로 인지한 내란죄 수사권 역시 인정되지 않는다는 주장해왔다.
하지만 대법원은 “헌법 84조 불소추특권의 본질을 고려하면 재직중 형사상 소추가 금지되더라도 수사까지 전면적으로 금지된다고 볼 수 없다”며 “대통령 직무 수행이나 국가원수로서 권위 확보에 지장을 초래하지 않는 범위 내의 수사는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또 내란죄는 직권남용죄와 배경 사실관계가 중첩되므로, 공수처법상 ‘직접 관련성’도 인정되고 이에 따라 공수처의 내란죄 수사권도 인정된다고 봤다.
대법원은 당시 경호처장의 승낙 거부에도 공수처가 수색영장을 집행한 것이 위법하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경호처장이 영장 집행 거부 사유를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않았고,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해할 우려가 인정되지 않으므로 승낙 거부는 부적법하다”며 영장 집행은 적법하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공소사실 가운데 공수처 1·2차 체포영장 집행 방해 계엄 당시 국무위원 심의권 침해, 사후 비상계엄 선포문 작성·폐기, 외신 상대 허위 자료 작성·배포 비화폰 기록 제출 거부 지시 등 혐의 대부분을 유죄로 인정한 2심 판단을 받아들였다.
대법원은 그 밖에 특검이 무죄 부분, 윤 전 대통령 측이 유죄 부분에 대해 각각 문제삼은 쟁점에 대해서도 법리 오해 등의 잘못이 없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1심은 체포방해 및 직권남용 등 혐의 상당 부분을 유죄로 인정해 징역 5년을 선고했다. 2심은 징역 7년을 선고했다. 2심은 윤 전 대통령이 공수처 체포영장 집행을 막은 혐의, 계엄 선포 당시 국무회의 외관을 갖추려 일부 국무위원만 소집해 불참한 국무위원 9명의 계엄 심의권을 침해한 혐의를 전부 유죄로 인정했다. 윤 전 대통령이 허위 사실이 담긴 PG를 외신에 전파하도록 지시한 혐의도 1심 무죄 판단을 뒤집고 유죄로 봤다. 다만 이 허위 공문서를 행사한 혐의에 대해선 무죄 판단이 유지됐다.
1심보다 늘었지만, 특검팀 구형량인 징역 10년보다는 적은 형량이다. 특검팀과 윤 전 대통령 측 모두 2심 판결에 불복했으나 대법원은 양측 상고를 모두 기각했다.
윤 전 대통령 측은 재판소원 청구를 예고했다. 윤 전 대통령 측 변호인은 상고심 선고 직후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 보호를 위해 재판소원 등 헌법재판 절차를 통해 이번 판결의 위헌성을 다툴 예정”이라며 “헌법 제84조가 보장하는 대통령의 형사상 불소추특권의 범위에 ‘재임 중 강제수사’가 허용되는지 여부는 국가 원수이자 행정부 수반의 헌법적 지위를 수호하기 위한 고도의 헌법적 쟁점인데도, 대법원은 이 심각한 법리적 전제를 완전히 묵인한 채 상고를 기각했다”고 말했다.
윤 전 대통령은 이날 서울고법 형사12-1부(재판장 이승철) 심리로 열린 내란 우두머리 등 혐의 항소심 법정에서 휴대폰으로 대법원 선고 중계방송을 지켜봤다. 자신의 체포영장 집행 방해 혐의에 대해 징역 7년이 확정되는 순간 윤 전 대통령은 고개를 끄덕이며 변호인들을 바라봤다. 또 쓴웃음을 지었다. 방청석에 있던 일부 지지자는 울음을 터뜨렸다. 송진호 변호사는 “너무 실망하지 말라” “전혀 개의치 않으니 상심하지 말라” “울면 저희도 힘이 안 난다”며 지지자들을 다독였다.
윤 전 대통령은 민주화 이후 다섯 번째로 유죄 판결이 확정된 전직 대통령이다. 전두환 전 대통령과 노태우 전 대통령이 12·12 군사반란과 비자금 혐의 등으로 1997년 4월 대법원에서 무기징역과 징역 17년을 확정받았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국정농단 사건으로 2021년 1월 징역 20년과 벌금 180억원을, 그보다 앞서 새누리당 공천에 불법 개입한 혐의로 징역 2년을 확정받았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뇌물수수와 횡령 등 혐의로 기소돼 2020년 10월 대법원에서 징역 17년이 확정됐다.
한편 비상계엄 관련 본류 사건인 내란 우두머리 혐의 사건은 서울고법 내란전담재판부에서 2심 재판이 진행 중이다. 앞서 1심은 윤 전 대통령의 내란 우두머리 혐의에 대해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윤 전 대통령은 ‘평양 무인기 침투’ 일반이적 등 혐의 1심에서 징역 30년을 선고 받았다. 한덕수 전 국무총리 재판에서 위증을 했다는 혐의로 1심에서 무죄를 받았다.
김건희 여사와 공모해 명태균씨로부터 여론조사를 무상으로 받은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 사건은 이달 13일 1심 선고가 이뤄진다. 수사와 공소 유지를 맡은 민중기 특별검사팀은 그에게 징역 33년과 추징금 1억 3720만원을 구형했다. 이달 27일에는 제20대 대선 과정에서 건진법사 전성배씨 등과 관련한 허위사실을 공표한 혐의(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1심 선고가 나온다. 윤 전 대통령이 이 사건에서 벌금 100만 원 이상을 확정받으면 국민의힘은 당시 보전받은 선거비용 등 397억 원을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반환해야 한다. 특검팀은 결심 공판에서 윤 전 대통령에게 징역 2년을 구형했다.
이명현 순직해병 특별검사팀이 기소한 2개 사건은 1심 재판이 한창 진행 중이다. 각각 채상병 순직 사건 수사에 외압을 행사했다는 의혹(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과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을 해외로 도피시켰다는 의혹(범인도피 등) 사건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