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J대한통운(000120) 이 노란봉투법으로 불리는 개정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시행 전 택배기사들과의 단체교섭을 거부한 것은 부당노동행위가 아니라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CJ대한통운과 집배점 택배기사 사이에 직접적인 근로계약 관계가 없는 만큼 개정 전 노조법상 사용자의 단체교섭 의무를 인정하기 어렵다는 취지다. 이번 판결로 노란봉투법 시행 전 제기된 원청 사용자성 사건에서 하청노조가 ‘실질적 지배력’만으로 교섭 의무를 인정받기는 한층 어려워질 전망이다.
대법원 3부(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9일 CJ대한통운이 중앙노동위원회 위원장을 상대로 낸 부당노동행위구제 재심판정 취소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로 판단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CJ대한통운과 집배점 택배기사 사이에 명시적·묵시적인 근로계약 관계를 인정할 수 없으므로 CJ대한통운이 구 노조법상 단체교섭 의무를 부담하는 사용자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원청이 하청 노동자의 근로조건에 일정한 영향력을 행사하더라도 개정 전 노조법 아래에서는 근로계약 관계 없이 단체교섭 의무를 지울 수 없다는 판단이다.
이번 사건은 2020년 3월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전국택배노동조합이 CJ대한통운에 단체교섭을 요구하면서 시작됐다. 택배노조는 집배점 소속 기사들도 배송 업무 전반에서 CJ대한통운의 지휘·영향을 받는 만큼 회사가 교섭에 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CJ대한통운은 직접 고용관계가 없어 노조법상 사용자가 아니라며 교섭을 거부했다.
택배노조는 지방노동위원회에 구제신청을 냈지만 지노위는 CJ대한통운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나 중앙노동위원회는 재심에서 CJ대한통운의 교섭 거부가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한다고 판정했다. 이에 CJ대한통운은 2021년 7월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1·2심은 모두 택배노조와 중노위 측 주장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대법원은 개정 전 노조법상 단체교섭 의무를 부담하는 사용자는 원칙적으로 근로자와 명시적·묵시적 근로계약 관계를 맺은 자라는 기존 법리를 유지했다.
이는 올해 5월 21일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단의 연장선이다. 당시 전합은 전국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 사내하청지회가 HD현대중공업(329180) 을 상대로 낸 단체교섭 청구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확정하며 노란봉투법 시행 전 사안에는 종전 법리를 적용해야 한다고 봤다. 이번 CJ대한통운 사건 역시 2020년 교섭 거부가 문제 된 만큼 같은 법리가 적용됐다.
다만 대법원은 개정 노조법 적용 가능성은 별도로 남겨뒀다. 대법원은 “향후 개정 노동조합법이 적용되는 구체적 사건에서 노동3권의 실효적 보장이라는 입법 목적에 맞게 사용자의 개념을 해석해야 함은 별론”이라고 밝혔다. 개정법 시행 이후 사건에서는 원청의 실질적 지배력 인정 여부에 따라 다른 판단이 나올 수 있다는 의미다.
이번 판결로 노란봉투법 시행 전 제기된 유사 사건을 진행 중인 노조들은 전략 수정이 불가피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구법이 적용되는 사건에서는 대법원이 원청의 하청노조 교섭 의무를 잇따라 부정하고 있는 만큼 기존 소송에서 ‘실질적 지배력’만으로 사용자성을 인정받기는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노조들은 구법 사건을 유지하더라도 개정 노조법 시행 이후 새로 제기한 원청 교섭 요구와 노동위 절차에 무게를 둘 가능성이 크다.
물론 개정법 아래에서도 원청의 교섭 의무가 모든 근로조건으로 확대되는 것은 아니다. 원청이 실질적·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하는 의제에 한해 사용자성이 인정되는 구조인 만큼, 임금 자체보다는 단가·수수료·물량 배정·작업시간·안전관리 등 원청의 영향력이 비교적 뚜렷한 의제를 중심으로 훨씬 복잡하고 잦은 갈등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택배노조는 판결에 반발했다. 김광석 택배노조 위원장은 “택배 노동자들의 절규를 외면한 거꾸로 된 판결”이라며 “구법을 이유로 이런 판단을 했지만 개정 노조법에 따라 진행 중인 원청 교섭 절차가 중단되거나 되돌아가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CJ대한통운은 노란봉투법 시행 이후인 올해 3월 택배노조와 단체교섭에 나서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다만 이는 원청의 사용자성을 전면 인정한 것이 아니라 개정 노조법상 원청의 실질적 지배력이 인정되는 의제에 한해 교섭에 응하겠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