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인데 물이 졸졸 흐르잖아요. 물이 없어요, 물이.” 지난달 취재차 찾은 섬진강에서 만난 한 지방정부 인사는 풀이 어지럽게 우거진 섬진강을 바라보며 이렇게 토로했다. 섬진강을 따라 전남 지역을 죽 훑었지만 그의 말마따나 섬진강 하류에서는 넘실거리는 강물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영산강보다 100㎞는 더 긴 물줄기를 가진 섬진강 하류 지역 주민들이 물 부족을 호소하기 시작한 것은 1965년 섬진강댐이 만들어지면서부터다. 강 최상류에 건설된 섬진강댐은 강물의 약 85%를 농업용수로 공급하는데 이 가운데 댐 아랫마을로 가는 물량은 17%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전북으로 향하는 물을 줄이면 될까. 광활한 김제 만경평야에서 농사를 지으려면 섬진강 물이 필요하니 댐 윗마을 입장에서는 이 역시 안 될 일이다. 이로 인해 댐을 사이에 둔 지역 갈등은 60년 넘게 해결되지 못했다.
전국에서 이런 식의 물 싸움이 수십 년째 이어지는 것은 물의 분배 방식이 전기와 다르기 때문이다. 전남에 전기가 부족하면 전국 어디에든 발전소를 짓고 송전선로를 깔면 된다. 발전소가 전력망에 연결되는 순간 전력망이 닿는 모든 곳으로 전기를 보낼 수 있어서다.
하지만 물은 주요 강의 물줄기를 따라 분절돼 있다. 전남에 물이 부족하다고 해서 한강에서부터 섬진강까지 도수관로를 깔거나 바닷물을 담수로 만드는 것은 현실적이지도, 경제적이지도 않다. 물그릇을 더 크게 만들든, 재이용 시설을 늘리든 물 부족은 결국 물이 부족한 지역에서 해결해야 하는 셈이다.
그러니 광주에 들어설 서남권 반도체 팹을 환영하면서도 동시에 물 부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은 일견 당연하다. 구체적인 시기도, 세부 방안도 없이 ‘여기서 몇만 톤, 저기서 몇만 톤씩 가져오면 된다’는 정부의 발표만으로는 심화되는 기후위기에도 불구하고 팹 용수 공급 방안이 현실적인지, 팹에 막대한 용수를 공급하면 서남권 다른 곳에서 물 부족 문제가 커지는 것 아닐지 우려를 지우기 어렵다. 수십 년짜리 물 싸움이 또 벌어지지 않도록 국민들과 지역 주민들이 신뢰할 수 있는 촘촘하고 큰 그림이 제시되기를 기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