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침체와 저마진에 시달리던 전통 제조기업들이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시장 공략에 속도를 내고 있다. 기존 설비와 생산기술을 활용해 데이터센터 설비·인프라 등 고부가가치 시장으로 사업을 확장하겠다는 구상이다. 전세계적으로 AI 데이터센터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면서 관련 시장에 진입하려는 기업도 갈수록 늘어날 전망이다.
8일 업계에 따르면 전통 제조기업들은 기존 제조 역량을 바탕으로 AI 데이터센터 밸류체인에 진입하고 있다. 대표적인 분야가 선박용 중속엔진 부품이다. 선박용 중속엔진은 내구성이 뛰어나고 장시간 일정한 출력을 유지할 수 있어 대규모 전력이 필요한 AI 데이터센터용 초대형 비상발전기(육상발전기)에 활용된다.
삼미금속은 HD건설기계에 선박용 중속엔진의 핵심 부품인 크랭크샤프트를 공급하고 있다. AI 데이터센터 확대로 육상발전기 수요가 늘면서 지난해 관련 매출은 전년 대비 24% 증가했다. 또한 미국 가스터빈 솔루션 기업 PSM과 터빈 블레이드 공급 계약을 체결하며 글로벌 전력 인프라 시장 진출의 첫발을 내디뎠다. 대동금속은 발전기용 주조품 수요가 늘면서 관련 수주 규모가 지난해 81억 원에서 올해 약 173억 원으로 증가했다.
AI 데이터센터 시장은 냉각설비 업계의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꼽힌다. 에어컨 제조기업 오텍캐리어는 국내 제조 역량과 합작 파트너사인 미국 글로벌 캐리어의 기술·영업망을 결합해 AI 인프라 시장 공략을 본격화한다는 방침이다. 글로벌 캐리어는 최근 엔비디아 마켓플레이스에 냉각수 분배장치 ‘65LL’ 샘플을 등록했다. 엔비디아 마켓플레이스는 AI 데이터센터 구축에 필요한 핵심 인프라를 검증하는 플랫폼으로 글로벌 AI 데이터센터 생태계 진입을 위한 관문으로 풀이된다.
오텍캐리어 관계자는 “단순 냉각장비 공급을 넘어 고효율 냉각설비와 플랜트 엔지니어링, 인프라 통합관제 플랫폼, 유지보수 서비스까지 아우르는 통합형 데이터센터 열관리 솔루션 구축에 속도를 낼 계획”이라고 말했다.
전력 인프라 분야에서도 사업 전환이 이어지고 있다. 직류 고전압 제어 스위치를 개발한 와이엠텍은 전기차·에너지저장장치(ESS) 부품 사업에서 축적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글로벌 AI 데이터센터 전력 인프라 시장으로 진출했다. 이밖에도 프레스 제조기업 심팩은 변전소와 인접한 포항 공장 유휴 부지를 AI 데이터센터로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업계는 AI 데이터센터가 전통 제조기업의 수익구조를 바꿀 계기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기존 생산설비와 제조기술, 부지 등 보유 자산을 활용해 자동차·조선·기계 중심의 저마진 사업에서 벗어나 고부가가치 시장에 진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행 기업경영분석에 따르면 전통 제조업의 평균 영업이익률은 3~4% 수준에 그친다.
반면 AI 데이터센터용 부품·인프라 사업은 두 자릿수 이상의 수익성을 기대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전통 제조업은 영업이익률이 한 자릿수에 불과해 기존 사업만으로는 생존이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 기존 제조 역량을 활용해 AI 데이터센터 밸류체인에 진입하는 움직임은 앞으로 더욱 확산될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