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취임 후 처음으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에 참석해 한국과 나토 간 방위산업 협력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방위산업 파트너십 2.0’을 제안했다. 60조 원 규모의 캐나다 차세대 잠수함 사업에서는 나토 동맹국인 독일에 수주를 내줬지만, 이를 계기로 단순한 무기 수출을 넘어 나토 공급망과 공동 개발 체계에 참여하는 ‘방산 연대’ 구축에 본격 나서겠다는 구상이다. 이 대통령은 한국이 안정적 생산 역량과 기술력을 모두 갖춘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라는 점을 부각하며 양측의 동반 성장을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7일(현지 시간) 튀르키예 앙카라에서 열린 나토 방산포럼에서 ‘대한민국과 나토의 방위산업 연대’를 주제로 기조 발제에 나섰다. 이 대통령은 먼저 “오늘날 우리는 지정학적 갈등이 상시화되는 불확실성의 시대를 살고 있다”며 “인공지능(AI)과 드론, 로봇과 같은 첨단기술의 군사적 활용이 전쟁의 승패를 가르는 핵심 요소가 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세계 각국의 방산 협력이 필수가 된 상황에서 “한국은 신뢰의 조건을 갖춘 국가”라는 점을 내세웠다. 이 대통령은 “나토와 대한민국은 참혹한 전쟁의 기억을 공유하고 있으며 엄중한 안보 환경 속에서 민주주의와 자유, 평화의 가치를 함께 지켜온 파트너”라면서 “이러한 신뢰 위에서 대한민국의 방위산업은 나토 동맹국의 협력을 바탕으로 성장했고 높은 기술적 호환성을 갖출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인 대한민국의 안정적인 생산 역량과 검증된 기술력이 나토의 오랜 노하우와 합쳐진다면 양측의 안보 역량은 지금보다 훨씬 강력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양측의 방산 역량 강화를 위해 ‘한-나토 방위산업 파트너십 2.0’으로 격상하자고 제안했다. ‘방위산업 파트너십 2.0’은 공동 개발, 공동 생산, 공동 운용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단순히 무기를 수출하는 데 그치지 않고 나토 동맹국 방산 공급망에 참여해 함께 무기를 개발·생산하고 운용하는 장기적인 안보 협력 체계를 구축하겠다는 전략이다. 이 대통령은 “첨단기술의 공동연구를 과감하게 확장해야 한다”며 “기술의 표준을 일치시키고 혁신의 방향을 공유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피력했다.
이 같은 구상은 캐나다 차세대 잠수함 사업 결과와도 맞닿아 있다. 정부 안팎에서는 한국이 기술력과 가격 경쟁력, 신속한 생산능력에서는 높은 평가를 받았지만 나토 표준과 군수 상호 운용성, 회원국 간 오랜 안보 신뢰라는 구조적 장벽을 넘지 못한 것으로 보고 있다. 결국 나토 공급망 안으로 들어가 공동 개발과 공동 생산을 확대해야 시장 진입장벽을 근본적으로 낮출 수 있다는 판단이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유럽 각국이 국방비를 대폭 늘리고 자국 방산 생산 기반 확충에 나서면서 나토 시장은 한국 방산의 핵심 전략 시장으로 부상하고 있다.
이 대통령은 캐나다 잠수함 사업 수주 실패를 새로운 도약의 계기로 삼겠다는 의지를 밝히기도 했다. 이날 앙카라로 출국하기 앞서 수주 결과가 발표된 뒤 이 대통령은 자신의 X(옛 트위터)에 “오늘의 경험은 우리 기술을 더욱 고도화하고 경쟁력을 한층 높이는 소중한 밑거름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올해 나토 방산포럼이 정상회의 부대 행사에서 공식 핵심 행사로 격상된 점도 의미가 크다. 이 대통령이 기조 발제와 패널 토론에 직접 참여한 것은 한국을 나토의 핵심 방산 협력국으로 부각시키는 상징적 행보라는 평가가 나온다.
이 대통령은 방산포럼 참석에 앞서 마르크 뤼터 나토 사무총장과 면담한 데 이어 일본·호주·뉴질랜드 등 인도·태평양 파트너국(IP4) 정상들과 회담을 가졌다. 뤼터 총장은 이 대통령에게 “한-나토 관계가 계속 강력히 발전할 수 있도록 각별히 노력해주셔서 감사하다”고 밝혔다. 순방 이틀째인 8일에는 주요 방산 수요국 정상들과 양자회담을 이어가며 K방산의 기술력과 신속한 조달 능력을 적극 알릴 예정이다.
한편 이번 정상회의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이 대통령의 회동 여부에도 관심이 쏠린다. 트럼프 대통령 주최의 리셉션 가능성도 있어 두 정상이 만날 경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이후 약 한 달 만의 대면이 된다. 이 대통령은 8일까지 튀르키예 일정을 마친 뒤 9일부터 몽골을 국빈 방문할 예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