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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기업에 사는 노동자

07.07.2026 1분 읽기

재정 당국이 예산을 짤 때 참조하는 우선순위 중에 이른바 ‘V 사업’이라는 게 있다. 대통령이 각별한 관심을 가진 예산 사업을 일컫는 말이다.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그래픽처리장치(GPU) 확보를 서둘러야 한다”고 말하면 관련 예산안 편성에 탄력이 붙는 식이다.

최근 심사가 진행되고 있는 2027년도 본예산에서 V 사업으로 분류된 프로젝트 중 하나로 ‘전통시장 현대화 사업’이 있다고 한다. 틈날 때마다 지방 전통시장을 방문해 상인들의 목소리를 듣는 것을 즐기는 이재명 대통령이 “전통시장을 도울 방법을 찾아보라”고 지시해 검토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사실 전통시장 지원이라고 해봐야 특별히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 전통시장에 e커머스를 도입한다든지 하는 시도는 과거에도 여러 번 있었지만 상인들의 무관심과 서로 다른 이해관계 등 때문에 제대로 진행되지 못했다. 지원은 늘려야 하는데 돈을 쓸 마땅한 방법은 없으니 결국 어닝(천장형 햇빛 가리개)과 같은 시설 교체 쪽에 상당한 예산이 투입될 것으로 전망된다.

느닷없이 전통시장 이야기를 꺼낸 것은 이 대통령이 침묵하는 이슈 하나가 전통시장과 상당한 연관을 맺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1년 4개월째 이어지고 있는 홈플러스 문제다. 우리나라 대부분 이슈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이 대통령이지만 홈플러스 이슈에 대해서는 유독 이렇다 할 직접 메시지를 낸 적이 없다.

청와대나 경제부처 관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 대통령은 홈플러스 문제를 시장의 논리에 맡기기로 한 것 같다. 회생이든 청산이든 아니면 제3의 또 다른 해법이든 정부가 직접 나서 입김을 불어넣지는 않겠다는 것이다.

사실 시장의 눈으로 본 홈플러스는 청산가치가 회생가치를 넘어선 ‘좀비기업’이다. 지금이라도 문을 닫고 남아 있는 자산으로 빚잔치를 벌이는 게 낫다는 의미에서다. 이미 본업 경쟁력이 훼손돼 돈을 벌어도 이자조차 내기 어려운 형편이다. 그런데도 몸집은 커 매출 1000억 원 이하, 자산 규모 5000억 원 이하 기업만 적용받을 수 있는 중소·중견기업의 혜택에서는 모조리 제외돼 있다. 차라리 동네 ‘식자재마트’처럼 월 2회 의무휴업이나 새벽배송 제한과 같은 족쇄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면 지금보다 사정이 조금은 나았을지도 모른다.

대형 사모펀드(PEF) 운용사인 MBK파트너스의 차입매수(LBO) 때문에 회사가 망가졌다고 주장하는 것도 시장 논리에는 어긋난다. 인수기업 자산을 담보로 돈을 빌려 회사를 사들인 뒤 다시 포장해 수익을 내는 것은 비단 MBK뿐 아니라 전 세계 펀드들이 모두 준용하고 있는 기본적인 인수합병(M&A) 전략이기 때문이다. MBK가 글로벌 상식을 벗어날 정도로 유달리 약탈적인 자본에 속하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홈플러스를 이대로 파산하게 둬야 하느냐. 이것은 또 다른 문제다. 세상 모든 일이 시장 논리로만 돌아가지는 않기 때문이다. 홈플러스가 전국 체인이 아닌 지방의 어느 곳에 자리를 잡은 향토기업이었다면, 집권 여당의 전통시장 우대 정책과 반대편에 있는 대형마트가 아니었다면, 쿠팡과 같은 e커머스 기업과 전통시장에만 유리했던 기울어진 운동장이 조금만 평평했더라면….

홈플러스가 문을 닫는 최후의 원인은 결국 회생을 위한 2000억 원을 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금융기관인 MBK와 최대 채권자 메리츠금융이 내세우는 시장의 논리가 그렇다. 구조조정에서 제1원칙은 정치의 논리가 아닌 시장의 논리가 돼야 한다. 우리나라가 제2의 도약을 하려면 과감한 구조조정을 통해 좀비기업을 솎아내고 재원의 선택과 집중을 이뤄야 한다는 주장에도 100% 동의한다.

하지만 시장의 논리 이면에 1만 2000명 홈플러스 노동자, 수만 명의 입점·협력 업체 종사자들이 자리잡고 있다. 전통시장 현대화에 들어간다는 예산의 일부만이라도 홈플러스 노동자들을 위해 쓰이기를 기대해본다. 반도체 사이클을 타고 한 해 성과급을 6억 원씩 받는 노동자와 구조조정에 밀려 직장을 잃는 노동자. 그 사이의 간극을 좁히는 일이 지금 정부가 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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