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3월 일본의 아베 신조 당시 총리는 ‘내일의 일본을 지지하는 관광 비전’이라는 중장기 관광 정책을 발표했다. 2020년까지 외국인 관광객 2000만 명을 달성한다는 기존 목표를 무려 2배 올려 4000만 명을 유치하겠다는 공격적인 목표를 제시했다. 아베 전 총리는 그중에서도 지역 관광 활성화를 전면에 내세웠다. 그는 직접 마이크를 잡고 “관광은 진정한 일본의 성장 전략이자 지방을 살리는 핵심 기둥”이라고 역설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오늘날 일본 관광의 현주소는 어떨까. 일본은 지난해 외국인 관광객 4268만 명을 끌어들여 한국(1894만 명)의 2배 이상을 기록했다. 일본의 관광 수입은 9조 5000억 엔(약 89조 6000억 원)으로 자동차에 이어 2위 외화벌이 산업이 됐다.
무엇보다 수도 도쿄에 쏠렸던 외국인 관광객이 전국으로 분산되면서 전국적으로 낙수 효과가 발생했다. 야놀자리서치에 따르면 일본 치바현의 외국인 관광객 방문율은 2011년 9%에서 2023년 37.5%로 늘었다. 같은 기간 오사카의 외국인 방문율은 25.2%에서 39.6%로, 교토는 16.7%에서 29.8%로 급등했다.
일본이 지역 관광 활성화를 위해 주목했던 인프라는 공항이었다. 지역 공항을 이용해 입국하는 관광객들에게 인센티브를 주고 관광지와 연계하는 교통편을 강화하는 식이다. 후쿠오카와 나가사키 사이 철도가 닿지 않는 일본 규슈 사가공항으로 입국한 여행객은 첫 24시간 동안 렌터카를 단돈 1000엔(약 9400원)에 빌릴 수 있다. 시코쿠 도쿠시마공항은 무료 공항버스 패스와 정액 관광택시를 내놓았다. 공항에 내린 외국인이 주변 도시까지 움직이도록 교통비 부담부터 낮춘 것이다. 그 결과 지난해 10월까지 도쿄와 오사카 등 전국 각지의 5대 허브 공항이 입국자의 76.3%를 고루 수용하고 비(非)허브 지방 공항을 통한 외국인 입국 비중도 23.7%에 달했다. 지역 공항을 활성화하자 관광산업 성장의 온기가 전국으로 퍼진 것이다.
한국도 일본 사례를 참고 삼아 지역 관광 활성화에 나섰다. 한국관광공사는 올 4월 ‘지방공항 국제관광 허브화 태스크포스(TF)’를 꾸리고 청주공항과 대구공항을 선도 모델로 선정했다. 지방 공항을 단순한 교통 거점이 아니라 외래 관광객이 지역으로 직접 들어오는 ‘한국 관광의 새 관문’으로 육성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장기적으로는 인천공항에 쏠린 입국 수요를 분산해 2028년 외국인 관광객 3000만 명 시대를 준비하는 행보다.
현재 한국을 찾는 외국인은 3명 중 2명이 인천공항에 첫발을 디딘다. 지난해 외래객 입국의 65.1%가 인천공항에 몰렸다. 입국 관문이 하나로 좁혀지면서 관광객의 동선도 서울과 수도권을 벗어나기 어렵다. 첫 숙박과 식음·쇼핑 역시 수도권에서 시작된다. 방한 외국인이 증가해도 지역 관광이 함께 성장하지 못하는 이유다. 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도 5월 국민주권정부 출범 1주년 기자간담회에서 “중요한 핵심은 지역”이라며 “외국인 관광객의 80% 이상이 수도권에 몰리면서 한국 여행이 비싸고 불편한 여행으로 인식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현재의 수도권 집중 구조로는 관광객이 늘수록 오버투어리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짚은 것이다.
관광공사가 청주·대구공항을 국제 관광 허브 선도 모델로 정한 것도 이 때문이다. 정부가 올해 국가관광전략회의에서 제시한 지방 공항을 통한 입국 관문 확대와 방한 관광 거점화 과제를 현장에서 풀어내겠다는 복안이다.
우선 관광공사는 지역 공항이 입국 관문 역할을 하려면 실제 청주·대구공항으로 입국하는 관광 상품이 활성화돼야 한다고 봤다. 이를 위해 지방 공항마다 담당 해외 지사를 정하는 ‘지역 유치 중점 지사제’를 도입했다. 국내에서 교통·숙박·식당·쇼핑 정보를 묶어 전달하면 현지 여행사와 온라인여행플랫폼(OTA)이 이를 바탕으로 상품을 구성한다. 필요한 항공편은 지방자치단체·공항공사·항공사는 물론 군 당국까지 함께 조율할 수 있는 체제를 만들었다.
국내에서는 지자체와 관광 업계가 외국인이 공항에 내린 뒤 어디서 자고, 무엇을 먹고, 어느 도시까지 이동할지 일정을 설계한다. 지역 공항을 중심으로 노선 유치와 여행 상품 설계, 연계 교통 및 숙박 인프라 구축이 동시에 진행되는 구조다. 박성혁 관광공사 사장은 “지방 공항은 더 이상 보조 관문이 아니라 외래객을 지역으로 직접 연결하는 한국 관광의 전략 거점”이라며 “관광공사는 해외 지사와 지역, 항공사, 여행 업계를 하나로 묶는 지역 유치 중점 지사제를 통해 지방 공항 기반 방한 관광 수요를 실질적으로 만들어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관광공사와 지자체가 이 과정에서 발굴한 지역 특화 콘텐츠는 이미 333개, 권역형·초광역 관광 코스는 35개에 이른다. 청주공항에 도착한 관광객은 대전 성심당에서 빵을 구입해 허기를 달랜 뒤 보령 머드축제를 즐기고 태안 해양치유센터에서 여독을 푸는 일정을 즐길 수 있다. 대구공항으로 입국하면 합천 해인사와 진주 유등축제를 거쳐 부산 해동용궁사 코스로 여행을 하게 된다.
성과는 수치로 나타나고 있다. 올해 1~5월 청주·대구공항의 외국인 누적 입국객은 전년 동기 대비 42.7% 증가했다. 청주공항 외국인 입국객은 5만 842명으로 114% 늘었고 대구공항은 4만 6146명으로 집계됐다. 청주공항 연계 광역 순환버스와 수요응답형 버스는 올 상반기에만 이용객 수가 7000명을 넘겼다. 하늘길도 새로 열리고 있다. 상반기 기준 연말까지 잡힌 청주·대구공항 부정기편은 356회로 당초 목표의 2배를 넘겼다. 관광공사는 중국 쿤밍·란저우, 일본 마쓰모토 등 11개 지역에서 부정기편과 방한 상품을 함께 개발하고 있다.
관광공사는 청주·대구에서 다듬은 모델을 내년부터 다른 지방 공항으로 확대 적용할 방침이다. 2028년 외래 관광객 3000만 명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이를 받아낼 수 있는 지역 관광 인프라가 뒷받침돼야 한다는 판단에서다. 박 사장은 “청주와 대구에서 확인한 성과를 바탕으로 공항별 특성과 시장 수요에 맞춘 유치 모델을 고도화할 것”이라며 “지역 관광 소비가 전국으로 확산될 수 있도록 지방 공항 허브화 전략을 속도감 있게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