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이 리히텐슈타인(1923~1997)과 카우스(KAWS·본명 브라이언 도넬리)의 반세기 세대차를 관통하는 공통분모는 팝아트다. 팝아트는 상업광고·대중문화 이미지를 화폭에 끌어들인 예술 경향인데, 두 작가 모두 만화적 이미지, 선명한 윤곽선으로 ‘고급 예술’의 문턱을 낮췄다.
리히텐슈타인은 싸구려 연애만화와 전쟁만화의 한 장면을 캔버스에 확대하고, 인쇄물의 망점까지 손으로 옮겨 그렸다. 기계 복제를 수작업으로 흉내 낸 이 행위는 미디어가 찍어내는 규격화된 감정의 공허함을 꼬집는다. 그의 ‘불완전한(Imperfect)’은 만화라는 하위문화를 미술관 안으로 들이면서도 회화의 완결성을 지켜낸 특별한 작품이다. 1990년대 네오 팝(Neo Pop) 세대인 카우스는 미키마우스나 스폰지밥을 패러디하며, 눈에 ‘X’를 그려 넣은 시그니처 캐릭터 ‘컴패니언’을 창조했다. 동반자를 뜻하는 이 캐릭터는 1999년 일본 브랜드와 협업한 피규어에서 출발했는데, 단숨에 동시대인을 매료시켰고 방탄소년단(BTS)과도 협업했다. 리히텐슈타인이 상업성에 대한 냉정한 관찰자였다면, 카우스는 거리 낙서에서 피규어와 패션 협업, 대형 조각까지 상업 플랫폼을 넘나든다.
경주 우양미술관이 소장품 기획전 ‘따로 또 같은(Otherhood: Close Distances)’을 열고 이들을 포함해 로버트 라우센버그, 프랭크 스텔라, 니키 드 생팔, 서세옥, 조덕현 등 17명 거장의 작품들을 선보였다. 전시는 ‘닮음과 차이’를 축으로 삼는다. 겉으로 닮았지만 그 안에 숨은 차이를 가진 작업들을 통해 동시대의 문제의식을 서로 다른 매체로 풀어낸 예술의 다양성을 경험하게 한다.
우양미술관의 옛 이름은 선재미술관이다. 대우그룹 김우중 회장의 부인 정희자 씨가 1991년 보문단지 내 힐튼호텔 옆에 개관한 곳이다. 당시 개인 소장품을 바탕으로 지방에서 보기 힘들던 해외 현대미술을 선보여 주목받았지만 대우그룹의 해체와 함께 미술관도 위기를 맞았다. 수산기업을 모태로 한 우양산업이 2012년 인수해 이듬해 우양미술관으로 재개관했고, 국민화가 이중섭과 박수근 전시를 통해 새로운 시작을 알렸다. 지금은 박물관 도시로 유명한 경주에서 현대미술의 성지로 새로운 명성을 다지는 중이다. 지난해 10월 경주에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열렸을 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힐튼호텔에 묵으며 세계의 이목이 또 한번 우양미술관에 쏠리기도 했다.
카우스의 또다른 작품 ‘스페이스’는 지난 2020년 팬데믹 시절 작가가 대형 기상관측용 풍선에 매달아 41.5㎞ 상공 성층권으로 띄웠던 작품이다. 단절의 시기에 집에서도 안전하게 바라볼 수 있는 작업을 만들고 싶었다는 게 작가의 설명이었다.
이번 전시의 미덕은 미술사 책에서 보던 작가들을 대표작과 함께 만난다는 점이다. 철판 같은 산업 재료를 소재로 한 닮은 듯 다른 작가들이 나란히 놓였다. 프랭크 스텔라와 존 체임벌린은 1962년 뉴욕 레오 카스텔리 갤러리 2인전으로 전후 미국 미술의 중심에 섰다. 추상표현주의의 감정 과잉에 반발한 세대로, 자동차 도료와 폐철 같은 산업 재료를 예술로 옮겼다. 결은 정반대다. 스텔라는 감정 이입을 절제하고 차단해 작품을 냉정하게 바라보는 입장이었다. 반면 체임벌린은 폐차장 강판을 압축하고 용접해 폭발하는 듯한 조각을 빚었다. 영국의 앤서니 카로는 산업용 철재를 좌대 없이 바닥에 놓아 관객과 같은 공간에 세웠다.
우리 작가와 외국 작가를 짝지은 구성도 눈길을 끈다. 서세옥의 ‘사람’ 연작은 수묵의 선으로 얽힌 인간 군상을 통해 공동체적 연대를 그린다. 크리스토퍼 울의 흑백은 부딪히고 미끄러지며 현대 도시의 불안과 소통 단절을 드러낸다. 독일 사진 거장 칸디다 회퍼와 이윤진도 마주섰다. 회퍼가 텅 빈 서구의 도서관과 극장에서 계몽주의의 거시적 권력을 짚는다면, 이윤진은 사람이 사라진 평범한 실내를 낯설게 비틀어 개인의 불안을 살핀다.
소장품전이 열리는 갤러리1과 별도로 갤러리2에서는 스누피 탄생 75주년 특별전 ‘하우 두유두 스누피? 75년’전이 열리고 있다. 1950년 태어난 애니메이션 피너츠를 기념한 전시다. 스누피와 찰리 브라운이 세대를 넘어 전한 우정과 유머를 촘촘하게 보여준다. 100여 점 이상의 작품과 콘텐츠에 26인의 국내외 작가, 30종 이상의 글로벌 패션 하우스, 50여 점의 오리지널 애니메이션 등이 선보였다. 방학을 맞아 경주를 찾는 가족관람객까지 겨냥했다. 두 전시 모두 11월29일까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