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거래소가 코스닥 활성화를 위해 추진 중인 승강제가 신약 개발 생태계를 훼손할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우량 기업군인 ‘코스닥 셀렉트’(가칭)에 재무 실적을 반영하게 되면 매출 없이 대규모 연구개발(R&D) 자금을 지출하는 신약 개발 기업은 편입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현행 ‘코스닥 글로벌’처럼 신약 기술이전 실적을 반영한다면 자체 개발 대신 신약 자산의 해외 유출만을 유도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이에 기술이전 외에 다양한 평가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6일 업계에 따르면 거래소는 코스닥 기업을 셀렉트, 스탠다드, 관리군으로 구분하는 승강제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우량 기업군인 코스닥 셀렉트 세그먼트에는 성장성과 안정성을 갖춘 대표 기업 70여 개를 선별해 편입할 예정이다. 구성 종목은 심사를 거쳐 주기적으로 변경된다. 거래소는 이르면 다음 달 공청회 등을 거쳐 구체적인 기준을 마련하고, 올 9월 말 확정안을 공개할 것으로 알려졌다.
코스닥 셀렉트에 편입되는 기업은 자금 유입 측면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하게 된다. 거래소는 코스닥 셀렉트 내에서도 최상위 기업을 중심으로 신규 지수를 개발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코스닥 셀렉트 연계 상장지수펀드(ETF)를 도입해 패시브 자금이 유입되도록 여건을 조성하고, 연기금의 투자 확대 또한 유도하기로 했다.
문제는 이러한 제도로 인해 국내 신약 개발 생태계가 훼손될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거래소가 안정성을 위해 재무 실적을 중시할 경우 매출이 발생하지 않는 신약 개발 기업의 코스닥 셀렉트 편입은 불가능하다. 이에 시장에서는 안정적인 매출과 이익을 내는 의료기기 기업, 특히 미용의료 기업의 편입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신약 개발 기업에 별도 기준을 적용한다면 어떤 기준으로 평가할 것인지를 두고 논란이 불거질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코스닥 셀렉트와 비슷한 역할을 하는 코스닥 글로벌 세그먼트의 경우 신약 개발 기업처럼 재무 실적을 적용하기 어려운 유형에 △자기자본 1000억 원 이상 △임상 1상 복수 후보물질 보유 △신약 허가 실적 또는 기술이전 실적 보유 등을 요구한다.
하지만 바이오 기업에 기술이전 실적을 요구하는 것은 신약 자산의 해외 유출만 초래하는 부작용을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김민정 DS투자증권 연구원은 “기술이전을 하면 신약 개발 비용과 리스크가 줄지만 출시 이후 벌어들일 수 있는 수익도 크게 줄어든다”며 “우량 기업을 판단하는 데 기술이전 여부를 본다면 국가가 기업의 기술력을 직접 평가하는 대신 손쉽게 해외 기업의 판단을 빌리겠다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는 정부가 ‘임상 3상 펀드’를 조성하고 신약 개발 완주를 장려하는 상황과도 배치된다. 국내 기업의 경우 임상 단계 이전에 기술이전을 하면서 선급금이 1000억 원도 되지 않는 헐값에 계약을 체결하는 경우가 많다. 중국 기업들이 임상 1상 이후 선급금 3000억~5000억 원을 받으며 기술 이전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또 계열 내 최초신약(First-in-Class)처럼 검증되지 않았지만 혁신적인 신약의 경우 오히려 기술 이전하기 어렵다는 점도 문제로 꼽힌다.
이에 전문가들은 신약 개발 기업의 코스닥 셀렉트 편입 기준을 다양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승규 한국바이오협회 부회장은 “국내 신약 개발 생태계에서 기술이전이 어느 정도 불가피한 측면도 있지만 직접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단계에서는 기술이전이 절대적 기준이 되면 안 된다”며 “직접 임상을 진행한다면 인정해주거나, 전문가 위원회가 기술력을 평가하는 등 여러 기준을 두고 선택 적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