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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산대첩 승리 이끈 거북선, 앉아서 노 저었을 것”

05.07.2026 1분 읽기

임진왜란 당시 조선 수군의 주요 전략 자산이었던 거북선의 내부 구조와 당시 운영 방식을 고증한 보고서가 나와서 주목된다.

국립해양유산연구소가 약 5년간의 연구·조사를 거쳐 ‘이충무공전서’에 기록된 두 거북선의 구조와 기능, 운영 체계를 분석한 보고서를 최근 펴냈다. 이충무공전서는 임진왜란이 끝난 뒤 약 200년이 지나 정조(1776∼1800) 시기인 1795년에 간행됐다. 연구소는 ‘거북선 학술복원 보고서’를 통해 “‘이충무공전서’ 속 통제영 거북선과 전라좌수영 거북선 모두 2층 구조”라고 밝혔다.

통제영은 조선시대에 경상·전라·충청 3도 수군을 총괄 지휘하던 수군 최고 지휘 기관이며, 전라좌수영은 전라좌도 연해의 수군 지휘와 방어를 맡았던 기관이다. 연구소는 “두 거북선은 자체 무게가 약 140.4t(톤)이며, 전체 길이는 꼬리를 포함해 35.27m(113척·1척은 31.22㎝ 적용)에 달하는 대형 전투선”이라고 추정했다. 내부 공간과 관련해서는 “2층 구조”라고 결론 내리면서 “1층은 무기 보관과 군사들의 휴식, 2층은 노를 젓고 화포를 쏘는 참전 공간과 다락 형태의 상포판(上鋪板)으로 구성됐다”고 설명했다.

상포판의 경우, 두 거북선이 서로 다른 용도로 썼다는 게 연구소 측 판단이다. 연구소는 “통제영 거북선은 돛을 운영하는 공간으로, 전라좌수영 거북선은 외부를 관측하는 공간으로 각각 사용된 것으로 확인된다”며 이를 표현한 그림도 첨부했다.

바다 위 거북선에서는 어떻게 노를 저었을까. 연구소는 “거북선의 거대한 규모와 전투 시 폐쇄성을 고려하면 서서 노를 젓는 방식은 구조적 제약이 컸을 것”이라며 앉아서 노를 저었을 가능성에 무게를 뒀다. 1763년 일본 오사카항에 정박한 조선통신사 ‘정사기선’을 묘사한 그림, 앞뒤로 앉는 형태의 노가 확인된 대동강 환목선 사례 등도 고려한 결과다.

연구소는 보고서에서 두 거북선의 구조와 차이도 상세하게 다뤘다. ‘이충무공전서’에 기록된 두 거북선은 노의 개수, 용머리 형태 등이 다르다. 연구소는 “통제영 거북선은 돛을 달아 돛대를 눕히거나 세우는 방식으로, 신속한 전환이 가능해 의장용과 전투용 모두 가능한 구조”라고 설명했다. 반면, 전라좌수영 거북선은 돛대가 없고 노가 중심이 되는 구조다. 연구소 측은 “기존에 출입구로 추정되던 개판(蓋板·지붕) 양 옆면의 구조물은 외부 관측과 전투 지휘를 위한 ‘관측장’이라는 점도 알게 됐다”고 전했다. 이번 연구는 30여년간 수중고고학과 전통 선박을 연구하며 조선통신사선을 비롯한 여러 고선박을 복원·재현한 홍순재 학예연구사가 이끌었다.

연구소는 연구 결과를 근거로 30분의 1 크기로 축소한 거북선 모형도 제작했다. 모형은 이달 부산 벡스코(BEXCO)에서 열리는 제48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7월 19∼29일)에 맞춰 한국의 유산을 홍보하는 ‘대한민국관’에서 소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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