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3월 노동조합법(노란봉투법) 시행으로 하청·협력 기업 노조의 원청과 교섭 요구가 빗발치고 있다. 원청 사업장의 사용자성을 판단하는 지방노동위원회는 10곳 중 9곳에 대해 하청 노조의 손을 들어줬다. 기업은 교섭창구 단일화 원칙이 무너진 상황에서 개별 하청 노조와 일일이 교섭을 해야 할 험난한 상황에 놓였고 급기야 경제단체에서 사용자 방어권이 절실하다는 호소의 목소리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이정식 전 고용노동부 장관은 2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노란봉투법은 기업별 교섭을 전제로 한 기존 법·제도 기반의 고용 현실과 맞지 않다”고 직격했다. 이 전 장관은 1986년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 정책실 연구위원, 2014년 한국노총 사무처장, 2017년 노사발전재단 사무총장, 2022년 고용노동부 장관을 역임한 국내 노동정책의 최고 전문가 중 한 명이다.
이재명 정부 들어 개정된 노란봉투법은 정규직·비정규직, 원청과 하청·협력 기업 간 근로 조건의 격차 해소를 목적으로 입법됐다. 시행 이후 하청·협력 기업 노조들의 원청 기업을 사용자로 인정하라는 요구가 잇달아 받아들여졌다. 이 때문에 지난달 말 기준 원청 사업장 당 평균 2.6개의 하청 노조 교섭에 응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 전 장관은 이와 관련 노란봉투법 시행으로 노사 교섭 창구 단일화의 원칙과 철학이 허물어졌다”며 “법과 제도는 현실에 적합하면서 다른 법·제도와 상충하지 않고 보완적으로 작동할 수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전 장관은 고용시장의 이중구조 현실을 개선하지 않은 채 노조법 개정이 이뤄지면서 문제가 발생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경제 성장기에는 중소기업도 임금 지불 능력이 높고 근로 조건 개선이 이뤄졌지만 경제 성장이 둔화되며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격차가 커졌다”며 “고용 시장의 이중구조는 깨뜨리지 못한 채 ‘원청에 책임 떠넘기기’ 식 법제화가 되며 문제가 불거졌다”고 지적했다.
사회적 혼란을 막기 위해 하루라도 빨리 보완 입법이 필요하다는 점도 강조했다. 이 전 장관은 “노조법은 사용자의 정의를 명확하게 하고, 교섭 절차의 보완과 함께 기업별 교섭을 전제로 한 규정의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며 “노사 간 자율적이고 자주적인 교섭 활성화를 위해 노조법뿐 아니라 공정거래법, 하도급법, 산업안전법, 중대재해처벌법 등 산업 현장 전반에 대해 일관성 있는 패키지법으로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노사 갈등을 해결하는 문화도 바뀌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이 전 장관은 “기업은 무분별한 외주·하청을 줄여야 하고, 노조는 파업 등 실력 행사를 자제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 평소에 대화와 소통을 통한 지속적인 협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기업 단위를 넘어 같은 산업 생태계의 하청·협력 기업 노조들을 대기업 노조와 묶어서 교섭 비용과 격차를 줄이고 상생할 수 있는 교섭 방법을 노사정 모두 고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대기업 노조에 대해선 전향적인 태도 변화를 주문했다. 그는 “가장 바람직한 방안은 하청·협력 기업 노조에 대기업 노조가 문을 열어주는 것”이라며 “하청·협력 기업 노조들은 대기업 노조의 지회나 지부가 돼 대기업 노조가 노사 교섭을 맡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인공지능(AI) 시대에 맞춰 청년 고용을 지원하는 교육이 필요하다는 점도 지적했다. 그는 “과거에는 연공서열형 시스템을 기반으로 사실상 종신 고용이 이뤄졌지만 기술 혁신으로 고용 환경은 완전히 달라졌다”며 “AI가 대체하기 어려운 경험, 철학 등을 습득하도록 기초 학문에 대한 국가적 투자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요즘 중소기업에서 경험을 쌓고 대기업에 ‘중고 신인’으로 재취업하는 사례가 늘었다”며 “청년에게 일자리를 경험할 다양한 기회도 제공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정치권에서 추진 중인 정년 연장과 관련해선 임금 체계 개편과 근로자의 겸업 허용이 선결 조건이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이 전 장관은 “현행 법규상 근로조건 불이익 등을 수반하는 사안은 노동자 과반수 혹은 노조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며 “생산성과 연계된 방식의 임금 체계가 도입되면 정년 연장의 의미가 사라지게 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근로자가 5일 중 3일만 근무하고 이틀은 다른 일을 하는 형태의 ‘투잡’이 가능하도록 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며 “과거와 같은 경직된 방식의 근무 대신에 유연성 있는 임금 체계를 도입하면 신규 고용을 두고 세대 간 상생이 가능해진다”고 설명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