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외국인이 한국 국채를 살 때 거쳐야 하는 환전·결제 절차가 단순해질 수 있다. 한국은행이 예금토큰 실험인 ‘프로젝트 한강’을 국고금 집행과 국채 토큰화, 국경 간 결제까지 포괄하는 차세대 지급결제 인프라로 키우겠다는 구상을 제시하면서다.
신현송 한국은행 총재는 1일 포르투갈 신트라에서 열린 유럽중앙은행(ECB) 중앙은행 포럼에서 ‘통합원장의 실제 구현: 프로젝트 한강의 교훈’을 주제로 논문을 발표하고 이 같은 방향을 밝혔다. 신 총재는 “다음 단계의 화폐 혁신은 돈에 거래 조건과 실행 규칙까지 담을 수 있는 토큰화”라며 “토큰화된 돈은 약속과 절차까지 품은 ‘똑똑한 돈’이 된다”고 설명했다.
그가 제시한 무대는 ‘통합원장’이다. 중앙은행 디지털화폐, 은행 예금토큰, 국채 같은 자산을 하나의 디지털 장부 위에 올려 거래하는 방식이다. 지금은 자산 거래 때 대금 지급과 자산 이전 시점이 어긋날 수 있지만, 통합원장에서는 두 과정이 동시에 처리돼 결제 위험을 줄일 수 있다.
신 총재는 민간 스테이블코인보다 중앙은행과 상업은행이 함께 참여하는 예금토큰 체계가 더 적합하다고 봤다. 스테이블코인은 달러나 원화 같은 법정화폐에 가치가 고정되도록 설계됐지만, 발행사의 신뢰가 흔들리거나 시장 충격이 발생하면 가치가 이탈할 수 있다.
특히 그는 탈중앙화된 퍼블릭 블록체인의 비용 문제를 지적했다. 신 총재는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탈중앙화 블록체인은 검증 참여자들에게 계속 보상을 줘야 하고, 안정성을 높일수록 비용과 수수료가 치솟는다”며 “사용자들은 더 싼 곳을 찾아 흩어지게 된다”고 말했다. 반면 중앙은행이 신뢰의 기반을 제공하고 상업은행이 예금토큰을 발행하는 구조는 화폐의 단일성을 유지하면서 비용을 낮출 수 있다는 설명이다.
프로젝트 한강은 한은이 이 같은 구상을 실제 결제 환경에서 시험한 사업이다. 한은은 지난해 4월부터 6월까지 7개 은행과 함께 약 8만 명의 이용자, 1만 2000개 가맹점이 참여한 예금토큰 결제 실험을 진행했다. 실거래 파일럿에서는 전자지갑 기준 8만1000명이 참여했고, 결제와 예금·예금토큰 전환을 포함해 총 11만 4880건의 거래가 이뤄졌다.
다음 시험대는 정부 재정 집행이다. 한은은 올해 하반기 2단계 실험에서 전기차 충전 인프라 구축 보조금과 공공부문 업무추진비 등에 예금토큰의 프로그래밍 기능을 적용할 계획이다. 자격을 갖춘 사업자가 허용된 용도로 정해진 기간 안에만 자금을 쓰도록 조건을 붙이면 사후 점검 부담과 오·남용을 줄일 수 있다.
장기적으로는 외국인의 한국 국채 투자 인프라로도 확장될 수 있다. 현재 외국인이 한국 국채를 사려면 환전과 국채 결제를 따로 진행해야 하지만, 한국 국채가 프로젝트 한강 플랫폼에서 토큰화되고 국제 공동 결제 프로젝트인 ‘아고라’와 연결되면 외환 결제와 국채 결제를 하나의 거래처럼 묶을 수 있다.
다만 실제 상용화까지는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비거주자의 원화 거래 범위, 국가 간 결제 규칙, 기존 실시간총액결제 시스템과의 연계 방식 등 풀어야 할 과제가 남아 있다. 한은 관계자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추진하겠다는 단계는 아니며 앞으로 고려해야 할 비전으로 보면 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