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는 사상 최고치를 향해 달려왔지만 정작 대부분의 종목은 그와 반대로 추락했다. 반도체로 쏠린 투자금이 시장 전체를 흔들면서 특정 종목과 상품에 자금이 과도하게 집중되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코스피는 오르는데 대부분 종목은 내렸다”
29일 BNK투자증권에 따르면 지난달 27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기초자산으로 한 단일종목 2배 레버리지 ETF가 상장된 이후 코스피·코스닥 상장 종목 가운데 상승한 종목은 105개(4.4%)에 그쳤다.
반면 2268개 종목(95.6%)은 하락했고, 이 가운데 121개는 주가가 절반 이상 떨어졌다. 하락 종목의 평균 수익률도 -26.9%를 기록했다.
BNK투자증권은 ‘코스피와 정반대의 투자심리’라는 보고서를 통해 이 같은 현상을 시장 내부의 극심한 수급 쏠림으로 분석했다. 시장 전반의 상승과 달리 실제로는 소수 반도체 종목에만 자금이 집중됐다는 것이다.
김성노 BNK투자증권 연구원은 “코스피와 코스닥 ADR(등락비율)이 금융위기와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수준까지 떨어졌다”며 “반도체로 자금이 집중되면서 상당수 종목이 펀더멘털과 관계없이 수급 악화로 급락하는 모습이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ADR은 최근 20거래일 동안 상승 종목과 하락 종목의 비율을 나타내는 지표다. 수치가 낮을수록 소수 종목만 오르고 대부분 종목이 내리는 쏠림 장세가 심하다는 의미다.
실제로 코스피에서 반도체 업종이 차지하는 시가총액 비중은 올해 2월 말 41.6%에서 최근 62.3%까지 확대됐다. 시장을 사실상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좌우하는 구조가 형성된 셈이다.
다만 보고서는 이러한 현상이 단순히 레버리지 ETF 때문만은 아니라고 분석했다. AI 투자 확대에 힘입어 다른 업종과 달리 반도체 기업들의 실적 전망이 계속 상향되고 있기 때문이다.
김 연구원은 “2분기 실적 시즌을 앞두고 대부분 업종의 이익 전망은 정체돼 있지만 반도체는 오히려 상향 조정되고 있다”며 “실적 개선이 뚜렷한 만큼 자금이 몰리는 것은 일정 부분 자연스러운 흐름”이라고 평가했다.
ETF 몸집 15조원…시장 변동성도 커졌다
시장에서는 레버리지 ETF 자체가 변동성을 키우는 요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가 상장된 이후 유가증권시장에서는 서킷브레이커가 3차례, 프로그램 매매를 일시 제한하는 사이드카는 11차례 발동됐다. 같은 기간 삼성전자·SK하이닉스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 16종의 시가총액은 약 15조원 규모까지 불어났다.
미국 ETF 전문매체 ETF닷컴도 최근 한국 증시를 분석하며 “레버리지 ETF라는 꼬리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라는 몸통을 흔드는 ‘왝더독(Wag the Dog)’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평가했다.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는 하루 수익률을 두 배로 맞추기 위해 장중과 장 마감 무렵 선물과 현물을 반복적으로 사고팔며 비중을 조정한다. 상품 규모가 커질수록 이 같은 리밸런싱 거래 자체가 기초자산 가격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설명이다.
국내 시장 구조도 변수로 지목됐다. 주식과 ETF 거래는 오후 3시 30분 종료되지만 개별주식 선물은 오후 3시 45분까지 거래된다. 이 15분의 시간 차이 때문에 ETF 가격과 순자산가치(NAV), 기초주식 종가 사이에 괴리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장 마감 단일가 시간에는 유동성공급자(LP)의 역할이 제한돼 개인투자자 주문과 ETF 헤지 거래가 겹칠 경우 가격 변동성이 더욱 확대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ETF닷컴은 “최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급등락을 글로벌 반도체 업황 변화로만 해석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국내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 구조와 선물시장 제도 등이 가격 변동을 증폭시키는 내부 요인으로 작용했을 가능성도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설명이다.
한편 BNK투자증권은 “반도체 쏠림 장세로 인해 시가총액이 보유 현금보다 낮아진 기업들은 장기 투자 관점에서 재평가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대표적인 종목으로는 다우기술, 다우데이타, 현대코퍼레이션, KG케미칼, 금호건설, 매일유업 등을 제시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