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그래픽처리장치(GPU) 부족 문제를 거론하며 추가 예산 확보 필요성을 언급하면서 2차 추가경정예산 편성 가능성에 힘이 실리고 있다. 청와대는 “아직 추경은 결정된 바 없다”고 즉각 부인에 나섰지만 시장에서는 추경 편성을 기정사실화 하는 분위기다. 전문가들은 “K자형 양극화의 하단을 방어하면서도 사회 전반의 생산성을 자극할 수 있는 방향으로 재원이 쓰여야 한다”고 주문하고 있다.
이 대통령은 28일 청와대에서 열린 ‘미래 신안보 혁신 기업 육성 전략회의’에서 “우리가 추경을 하게 될지는 모르겠는데 GPU 구매가 필요하면 예산을 보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동안 이 대통령이 나서 “추경이 필요하다”고 밝힌 뒤 정부가 예산 편성에 나선 경험을 토대로 보면 이번에도 같은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크다는 게 정부 안팎의 전망이다.
추경을 뒷받침할 재정 여건은 충분하다. 지난 4월 26조2000억원 규모의 1차 추경을 편성한 이후에도 세수는 빠른 속도로 늘고 있다. 올해 4월까지 걷힌 국세수입은 164조1000억원으로 1년 전 같은 기간보다 21조9000억원(15.4%) 증가했다. 반도체 호황이 연말까지 지속돼 이 같은 속도가 유지될 경우 국세수입은 431조5000억원에 달할 전망이다. 1차 추경에서 정부가 제시한 올해 국세수입 예상치(415조4000억원)를 16조1000억원이나 웃돈다. 5월말 기준 700조 원을 넘어선 코스피 기업들의 연간 순이익 컨센서스가 시장 예측대로 실현될 경우 올 하반기부터 내년도 납부분의 중간예납이 시작돼 30조 원이 넘는 초과세수가 예상된다는 분석도 있다. 여기에 증권거래세와 소득세 등을 더하면 추가 세수는 최대 40조 원에 이를 전망이다.
2차 추경 편성이 현실화 할 경우 예산 배분은 크게 나눠 3가지 트랙에 집중될 전망이다. 우선 K자 양극화 해소를 위한 재정 지원이다. 올해 우리나라 명목성장률은 10%를 넘길 가능성이 높지만 그 성장률의 온기는 일부 대기업과 그 대기업에 종사하는 근로자들에게 쏠릴 것으로 보인다. 실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노동자 수를 모두 합쳐도 약 16만 명에 불과하다. 고성장이 고용과 소비로 이어지는 선순환 사이클이 이번에는 작동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반면 고환율·고물가 등은 대한민국 전체 경제주체에게 고통을 전가한다. 이번 추경에서 어떤 식으로든 현금성 예산이 편성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이 대통령 역시 최근 국무회의에서 “고물가에 주식도 대형 우량주만 오르며 양극화가 심하다”며 “서민 소득지원방안을 연구해야한다”고 지시한 바 있다. 정부는 다음달 내놓을 하반기 경제성장전략의 핵심 축 가운데 하나로 양극화 해소를 제시하고, 이에 맞춘 구체적인 소득지원 정책을 마련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지난 1차 추경 당시 전국민 70%에게만 선별 지급했던 현금성 지원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소비진작과 소득 양극화 해소를 동시에 겨냥한 전국민 지원금 카드를 다시 꺼낼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앞서 이 대통령은 지난 2025년 6월 취임 직후 국회를 통과한 30조5000억원 규모의 2차 추경에서 전국민 민생회복지원금(1인당 15~50만원)으로 10조3000억원을 투입했다.
다만 단순히 현금지원성 예산만으로는 생산성 증대가 이뤄지지 않는다. 이에 따라 반도체·인공지능(AI) 등 미래산업 투자에도 상당 수준의 자금이 투입될 전망이다. 미래대응기금이나 국부펀드 등에 초과세수의 상당액을 쌓아 미래에 투자하는 방안도 2차 추경의 핵심 사업 후보로 거론된다.
투자은행(IB) 업계의 한 관계자는 “청년, 취약계층 등 K자 양극화의 하단에 초과세수를 쓰는 것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면서도 “다만 미래 성장을 위한 투자에 더 많은 돈을 써 다가올 반도체 사이클 하락에 대비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하반기 기준금리 인상 등 시장변동성 확대에 대비해 안전장치를 마련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올해 예정된 적자성 국채(순발행) 109조4000억원 발행 물량을 탄력적으로 줄이는 방식이 대표적이다. 이 대통령이 “국가부채가 늘었으니 초과세수로 빚을 갚자는 생각은 바보 같은 짓”이라며 여전히 ‘초과세수=국채상환’ 등식에 부정적인 인식을 드러내고 있어 상환규모는 크지 않겠지만 상징적인 수준에 머물렀던 1차 추경 당시 국채 상환 규모(1조원)보다는 폭이 확대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