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25일 찾은 서울 광장시장은 ‘전통시장’이라는 단어가 무색하게 젊은 층 사이에서 인기몰이 중인 패션·뷰티 브랜드들이 입점해 있었다. 광장시장 서문에 들어서자 보라색 간판의 ‘오프뷰티’가 눈에 들어왔다. 오프뷰티 매장 옆의 사잇길로 들어서자 ‘마뗑킴’ ‘세터’ ‘마리떼 프랑소와 저버’ ‘키르시’ 등 요즘 잘나간다는 패션 브랜드들을 한자리에 모은 매장이 등장했다. 외국인 관광객들로 붐비는 매장을 벗어나자 특유의 쨍한 노란색으로 뒤덮인 ‘코닥 광장마켓’이 나타났다. 다시 걸음을 옮기자 이번엔 패션 아이웨어 브랜드 ‘더블 러버스’와 ‘아크메드라비’가 보였다.
이 중에서도 가장 눈길을 끈 것은 광장시장 중앙에 자리 잡은 ‘올리브영 광장마켓점’이었다. CJ올리브영은 올해 4월 말 시장 주단부 2층에 1960년대 상점에 K뷰티를 입힌 ‘올영양행’ 콘셉트의 매장을 열었다. 계단을 오르자 나타난 805㎡(약 244평) 규모의 매장에는 평일 낮임에도 K뷰티 제품을 쇼핑하는 외국인들로 가득 차 있었다.
매장 내부용 회색 쇼핑백을 양손에 든 외국인들은 한국에서만 구할 수 있는 제품을 놓칠세라 곳곳을 꼼꼼히 돌아봤다. 이들은 ‘피부 진단 부스’와 ‘두피 진단 부스’에 들러 친구나 연인의 피부·두피를 스캐너로 촬영하며 웃음꽃을 피우기도 했다. 매장 한편에 마련된 ‘한복 체험’ 코너와 ‘도장 엽서 작성’ 코너에서 직접 한복을 입어보면서 전통 체험을 하는 외국인도 여럿이었다.
이날 올리브영 매장에서 만난 한 외국인 관광객은 “넷플릭스 시리즈에서 광장시장 맛집을 보고 한국의 시장에 관심이 생겼는데 마침 올리브영과 마뗑킴 같은 매장들도 있다고 해 꼭 와보고 싶었다”며 “청계천과 경복궁·인사동 등 다른 관광지와도 가까워 여행 동선을 짜기에도 좋다”고 말했다. 올리브영 매장 인근에 마련된 팝마트의 ‘히로노’나 ‘라이프워크’ ‘휠라 언더웨어’ ‘크록스’ 등의 매장에도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중장년층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전통시장을 외국인 관광객과 MZ세대가 찾으며 이들을 겨냥한 패션·뷰티 브랜드들이 잇달아 입점하고 해당 브랜드가 글로벌 MZ를 시장으로 불러들이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지고 있다. 트렌드모니터의 ‘2025 전통(재래)시장 관련 인식 조사’에 따르면 광장시장이 핫플레이스로 떠오른 이유에 대한 질문에 응답자의 42%(중복 응답)가 ‘외국인이 많이 찾는 관광지라서’를 꼽기도 했다.
한 리테일 업계 관계자는 “외국인들은 한국의 트렌드를 경험하고 싶어 하고 한국인들은 해외에서 인기 있는 브랜드를 궁금해한다”며 “과거에는 특정 트렌드를 각국에서 체감하는 데 시차가 있었지만 이제는 소셜미디어를 통해 실시간으로 접할 수 있기 때문에 패션·뷰티 브랜드들이 외국인과 한국인이 동시에 찾는 전통시장을 노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외국인은 이미 전통시장의 큰손으로 자리 잡았다. 마뗑킴 광장마켓점의 경우 올해 1분기 전체 매출의 약 90%를 외국인이 차지했다. 올리브영 광장마켓점 역시 지난달 매출의 약 80%가 외국인 고객에게서 발생했다. 지방 전통시장도 마찬가지다. 방한 외국인 전용 결제 플랫폼 ‘와우패스’가 방탄소년단(BTS)의 부산 공연이 열린 6월 둘째 주(8~14일) 결제액을 분석한 결과 자갈치시장·국제시장·부평깡통시장이 모여 있는 부산 남포동 관광 상권의 결제액이 전년 동기 대비 123.6% 증가했다. 구체적으로 부평깡통시장 권역은 137.7%, 국제시장·광복로는 130.3%, 자갈치시장은 68.3% 늘었다. BTS 공연을 보기 위해 부산을 찾은 외국인들이 전통시장을 함께 방문한 영향으로 풀이된다.
식재료나 생필품이 대부분을 차지하던 전통시장의 업종 구성도 달라지고 있다. 국가통계포털의 ‘전통시장·상점가 및 점포 경영 실태 조사’에 따르면 전국 전통시장에서 의류·신발 업종이 차지하는 비중은 2020년 15.8%에서 2024년 19.4%로 확대됐다. 서울은 같은 기간 25.8%에서 43.3%로 증가했다. 반면 농산물·축산물·수산물 업종 비중은 전국 기준 29.9%에서 28.6%로, 서울은 16.8%에서 15.4%로 각각 감소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