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잼민이(예의 없는 초등학생)’, ‘급식충(급식 대상인 청소년)’, ‘이대남(20대 남성)’, ‘영포티(젊은 감각을 유지하려는 40대)’, ‘연금충(연금 수령자인 노년층)’…
연령을 기초로 한 집단을 가리키는 용어가 본래 의미를 벗어나 혐오를 함축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미국 등에서도 특정 연령대를 뜻하는 용어가 존재하지만 이같이 비하의 의미를 담지는 않는다. 연령에 따라 관계를 형성했던 한국 특유의 문화가 반영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지만 극심한 세대 갈등을 봉합하기 위해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회옥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24일 서울 서대문구 연구실에서 진행한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한국 특유의 연령 차별주의는 하루빨리 사라져야 할 폐단”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나이는 숫자가 아니라 우리 삶을 둘러싼 보이지 않는 규범이자 차별의 근거”라며 “연령 차별주의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나이에 따른 고정관념과 차별적 관행으로 결합해 한국인 삶의 전반을 규율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정 교수는 인권과 사회통합 등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학자이다. 서울시 명예시장(이민·이주노동 분야), 이민정책연구원 이사, 재외동포청 자체평가위원, 국민통합위원회 청년정치시대특위 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정 교수는 연령 차별주의가 세대 갈등을 더욱 부추긴다고 우려했다. 그는 “정치적 대립은 보수와 진보 등 이념이나 정책의 지향적인 가치로 구분돼야 하는데, 우리 사회는 세대 간 갈등으로 번지고 있다”며 “결과적으로 연령 차별적인 관행과 제도가 나이에 대한 고정관념과 편견을 강화해 나이로 상대방을 규정하는 악순환을 불러온다”고 우려했다. 그는 ‘개저씨’, ‘급식충’, ‘연금충’ 등 특정 세대를 비하하는 용어의 생산과 확산을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어린이부터 청소년, 청년, 중장년, 노년에 이르기까지 전 연령대에 걸쳐 멸칭을 만들어내고 전염되듯 확산하는 혐오의 시대로 가고 있다”며 “언어는 사회를 비추는 거울이다. 혐오를 부추기는 용어의 사용을 중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방향은 ‘연령 블라인드’ 사회라는 제안도 내놓았다. 해외처럼 서로 나이를 묻지 않는다면 상대에 대한 고정관념과 편견에서 벗어나 더 깊은 연대를 맺을 수 있다는 뜻이다. 그는 “한국에서 나이는 단순히 삶의 흐름을 표시하는 지표가 아니라 사람을 재단하고 구속하는 도구로 사용된다”며 “나이가 몇 살인지에 따라 해야 할 일과 해서는 안 될 일이 나뉘고, 그에 맞춰 사회의 시선과 기대가 달라진다. 상대방의 나이를 모르면 이런 편견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조언했다. 그는 노인과 청년이 함께 어울려 사는 네덜란드의 요양시설 후마니타스의 사례를 소개하며 “교류와 접촉이 혐오를 없애는 핵심”이라며 “공간적 거리감을 줄여 접촉 빈도를 높여야 한다. 노인정과 어린이집, 키즈카페, 독서실 같은 여러 세대가 모이는 시설을 가까운 공간에 모아둘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연령 차별에 저항하지 않는 문화도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선거에서 동수 득표자에 대한 처리이다. 현행 공직선거법에 따르면 득표수가 같은 경우에 연장자를 당선인으로 결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올해 ‘6·3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는 경남 고성군 가 선거구에 동수 득표자가 나왔다. 김향숙 국민의힘 후보는 무소속 이우영 후보가 나란히 2077표를 획득했지만, 관련 규정에 따라 두 살 어린 까닭에 낙선했다. 이 같은 연장자 당선 제도는 정치 선거뿐 아니라 조합장, 노사협의회, 스포츠 단체, 종교단체 등에서도 폭넓게 적용된다. 정 교수는 “차별로 인한 피해 당사자가 저항하지 않는 이유는 연령 차별주의가 우리 의식 속에 깊숙이 침투했기 때문”이라며 “성(性), 인종, 연령에 따른 차별을 거부하고 개선하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이 같은 노력이 수반되면 서구 민주국가처럼 나이에 지배되지 않는 사회로 발전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노키즈존’에 입장을 거부당했던 어린이도 언젠가 청년이 되고, 또 ‘영포티’, ‘연금충’으로 규정되는 나이가 된다”며 “나이는 숫자일 뿐’이라는 말대로 연령의 굴레에서 벗어나 화합하는 사회로 거듭났으면 좋겠다”고 언급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