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상 이변으로 밥상 물가에 비상이 걸렸다. 이른 폭염으로 농·축산물 가격이 들썩이며 식당에서 반찬으로 내주던 계란말이도 실종됐다. 계란은 이달 평균 소매가격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8% 이상 급등하며 소비자 물가를 자극하는 상황이다. 대파와 고등어 등 주요 농·축·수산물 역시 전년보다 두 자릿수 이상 오르는 등 기후 변화에 따른 수확량 감축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남재철 서울대 농업생명과학대학 특임교수는 23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기후 변화 대응을 위해 탄소 중립에만 집중할 게 아니라 달라진 기후에 적응하기 위한 정책적 노력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남 교수는 서울대 농대를 졸업한 뒤 기상청에 입사해 요직을 두루 거쳤고 2017년 기상청장을 역임한 기후 전문가이다. 기상청장 퇴임 후 서울대 특임교수로 재직하며 저서 ‘6번째 대멸종 시그널, 식량전쟁’을 펴내는 등 기후 변화의 심각성과 식량 안보의 중요성을 알리고 있다.
남 교수는 한반도가 지구 온난화 영향으로 여름이 길어지고 겨울은 짧아지는 등 아열대성 기후로 바뀌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과거에는 6~8월이 여름에 해당하는 기간이었지만 이제는 5월부터 더위가 시작돼 9월까지 폭염과 열대야가 이어지고 있다”며 “100년 전과 비교하면 여름이 25일 늘어난 반면 겨울은 22일 줄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1년 가운데 4개월이 여름 날씨가 되는 등 계절 구분이 무너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올여름은 극심한 무더위와 잦은 강수가 나타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최근 100년간 세계 평균 기온이 가장 높았던 시기가 2023~2025년”이라며 “우리나라 역시 지난해 여름이 기상관측 이래 가장 더웠는데 올해도 같은 흐름이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는 열대 동태평양 지역 해수 온도가 예년보다 높아지는 ‘슈퍼 엘니뇨’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남 교수는 “기상학자들은 해수 온도가 예년 평균보다 2도 이상 높은 슈퍼 엘니뇨 현상이 올해 나타날 확률을 80% 이상으로 예측하고 있다”며 “슈퍼 엘니뇨 현상이 발생했던 2015~2016년에 동남아시아에 가뭄, 남미에 홍수 등 전 세계적으로 재해가 자주 발생했다”고 우려했다.
이 같은 극심한 기후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농업 분야의 혁신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그는 “과거에는 한반도 전체가 온대 기후였고 사과 재배지가 대구 일대였는데 이제 강원도 양구까지 북진했다”며 “평균 기온이 1도 오르면 작물 재배 적지가 80~100km 북상하는데 우리나라는 평균 기온이 100년 전보다 2도가량 올랐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기후 변화로 폭염이나 온도 상승에 강한 품종을 개발해야 하는데 시간이 상당히 소요되는 문제점이 있다”며 “기존 농작물은 보통 10~20년, 과수는 30~40년 정도 걸렸는데 심어보지 않고 예측할 수 있는 디지털육종 기술 등을 활용해 품종 개량 기간을 더 단축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식량 문제를 안보 차원으로 다뤄야 한다는 제안도 내놓았다. 국내 농업 여건상 일정 부분 수입이 불가피한 만큼 수입국 다변화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는 “싱가포르는 식량의 90%를 수입하지만, 수입국이 170여 개에 달해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의 세계식량안보지수 상위권으로 평가된다”며 “현재 우리나라의 주요 곡물 수입국은 미국·호주·브라질·아르헨티나·우크라이나 등 몇 개에 불과한데 조금 더 가격이 비싸더라도 더 많은 국가로 늘려야 한다”고 설명했다. 한국은행 역시 2024년 ‘애플플레이션’ 등 농작물 가격 불안 현상이 극심해지자 일부 과일·채소에 대한 수입 확대 등 구조 개선이 필요하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남 교수는 식량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입법 필요성도 언급했다. 그는 “중국은 2024년 식량안전보장법을 시행했고, 일본 역시 같은 해 식료·농업·농촌기본법을 개정해 식량 안보를 국가 전략 목표로 규정했다”며 “우리나라는 아직 식량 안보 관련법에 큰 관심이 없지만, 식량 위기의 심각성을 깨닫게 된다면 입법이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기후 정책과 관련해선 탄소 중립에만 몰입하지 않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기후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탄소 중립·녹색성장 기본법을 제정할 당시 기상청에 근무했다”며 “탄소 중립만 달성하면 기후 위기에서 벗어나는 게 아니다”라고 쓴소리를 냈다. 그는 이어 “우리나라의 탄소 배출량은 전 세계의 1% 정도에 불과하다”며 “탄소 중립에만 몰입할 것이 아니라 기후변화 적응을 위한 예산 투입과 정책적 노력이 병행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기상 산업의 육성 필요성도 제안했다. 그는 “등산로 초입의 편의점에 김밥을 얼마나 들여다 놓을지를 일주일 전쯤 기상으로 예측해 제공하면 소상공인에게 큰 도움이 된다”며 “미국 등 선진국은 기상 데이터를 산업에 이용해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이러한 선진국형 기상서비스가 활성화될 필요가 있다”며 “우리나라는 기상산업진흥법 등을 통해 기상사업자를 지원할 수 있는 만큼 앞으로 발전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