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력공사가 ‘비정형 만기’ 회사채발행을 확대하고 있다. 통상 한전채는 2·3·5년물을 중심으로 발행됐으나 최근 시중 금리가 급등 조짐을 보이자 만기 다변화 전략으로 대응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한전은 전기요금은 동결하면서 이란 전쟁으로 인한 전력원가 인상 수요는 흡수하고 전력 인프라 투자는 늘려야하는 삼중고를 안고 있어 하반기 중 한전채 발행을 늘릴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22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한전은 19일 만기 2년 4개월, 2년 10개월 채권을 각각 5000억 원, 7000억 원씩 발행했다. 발행 금리는 2년 4개월물 3.970%, 2년 10개월물 4.070%다.
한전채 발행 만기가 2년 4개월, 2년 10개월로 구성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 동안 주로 2·3·5년물 등 연 단위나 1년 6개월물 등 6개월 단위로 꺾어지는 만기를 선호했는데 4개월·10개월 단위로 만기 범위가 더 쪼개진 것이다.
이는 최근 국고채 금리 급등으로 회사채 금리까지 치솟아 자금 조달이 어려워지자 수요처를 늘리려는 전략으로 분석된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한전채 3년물 금리는 올 초 3.169%에서 이달 초에는 4.247%까지 치솟아 6개월 여만에 1.1%포인트나 급등했다. 이는 2023년 11월 이후 2년 7개월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금리가 오르자 신용도에 대한 우려가 부각되며 일부 한전채는 응찰액이 발행 예정량을 채우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
한전 관계자는 “올 상반기 채권 시장이 전반적으로 경색돼 자금 조달 통로를 넓히려 만기를 다양화 하고 있다”며 “시장 수요 조사 결과 2년 4개월 등의 만기를 원하는 기관투자자들이 많아 수요처를 확대하려는 포석”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이번 2년 4개월물 5000억 원 발행에 5700억 원, 2년 10개월물 7000억 원 발행에는 7300억 원이 응찰했다.
전기 요금 동결 기조 속 중동 전쟁까지 겹쳐 재무 부담 가중이 예상되자 만기 구조를 분산하려는 의도도 깔려 있다.
한전은 이날 3분기 전기요금을 현재 수준 그대로 동결하기로 했다. 한전은 매 분기 전력요금을 구성하는 요소 중 하나인 ‘연료비 조정단가’를 1㎾h(킬로와트시)당 ±5원 범위에서 결정해 발표하는데 이를 이전과 같은 +5원으로 유지했다. 2022년 3분기 이후 17분기 연속 동결이다.
전력 당국이 장기간 연료비 조정단가를 최고 수준에 묶어두는 것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당시 누적된 적자가 아직 해소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전의 올해 1분기 영업이익은 3조 7842억 원으로 전년 대비 0.8% 증가했지만 연결 부채가 여전히 206조 4000억 원이고 하루 이자만 114억 원에 이른다.
문제는 이란 전쟁으로 국제 액화천연가스(LNG) 가격이 널뛰면서 국내 전력도매가격(SMP)도 시차를 두고 오를 가능성이 커졌다는 점이다. 전기요금이 동결된 가운데 SMP 상승은 한전의 전력 구입비 증가로 이어지는 만큼 향후 재무 부담이 커질 수 있다. 정부가 지역별 차등요금제 등을 도입해 지방으로 진출하는 기업들에게 전기요금 혜택을 주려 한다는 점도 한전의 재무부담을 가중하는 요인이다.
한 채권시장 관계자는 “재무 압박은 커지는데 한전은 인공지능(AI) 전력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송전망 투자를 위한 채권 발행이 불가피하다”며 “그나마 채무 발행 만기를 월 단위로 분산하면 미래에 갚아야 할 돈이 특정 월에 집중되지 않아 부담을 덜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채권발행한도 정상화는 한전이 해결해야 할 과제로 꼽힌다. 한전은 러·우 전쟁 충격을 흡수하기 위해 특례 규정에 따라 자본금과 적립금 합계의 5배(90조원)까지 사채를 발행할 수 있는데 해당 특례가 2027년 종료된다. 내후년부터는 기존 규정인 2배 수준으로 복귀한다. 한전이 그 사이에 자본·적립금을 늘리거나 채권 잔액을 줄이면 문제가 해소될 수 있지만 쉽지 않다. 이에 한전채 발행 한도 확대 조치를 연장하거나 전기요금 현실화 등 추가 대책이 필요하다는 조언이 나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