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란 전쟁이 격화되던 3월 말 정부가 석유화학 기초 원료인 나프타 수출을 전면 제한하자 산업계에서는 ‘초강수’ 대책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국내 전체 나프타 생산량 중 수출 비중은 11% 수준에 그치기는 하지만 수출제한 조치가 기업의 경제활동을 정부가 적극적으로 차단하는 행위인 데다 중국·일본·싱가포르 등 기존 주요 나프타 수입국과의 관계도 고려해야 했기 때문이다.
석유화학 업계의 한 관계자는 “당시 국내 석화 업계가 보유한 나프타 재고가 2~3주분에 그칠 정도로 급박한 상황이었다”며 “결과적으로 우리나라 수급을 안정시켰다는 점에서는 잘한 대책”이라고 설명했다.
이 조치가 본격화된 직후 수출용 나프타 대부분은 내수용으로 전환됐다. 16일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4월 나프타 수출액은 585달러(약 88만 원)까지 감소했다. 정부의 허가를 받아 수출된 나프타 물량은 308㎏뿐이었다. 전쟁 전이었던 2월에 수출된 나프타 물량이 약 31만 톤이었음을 고려하면 100만 분의 1 수준으로 쪼그라든 것이다. 5월 나프타 수출 규모는 7500만 달러, 약 7만 5700톤으로 4월보다 늘었지만 1년 전과 비교하면 수출량은 여전히 80% 가까이 감소한 상태다.
강력한 수금 조치는 우리나라의 ‘나프타 쇼크’를 막는 데 기여했다. 일본이 나프타 부족으로 홍역을 치른 것과 비교하면 방어 조치가 잘 이뤄진 셈이다. 수출제한과 더불어 수급 조정, 나프타 수입 단가 차액 50% 지원 등 정부의 각종 조치가 이어지면서 5월 나프타 공급은 전쟁 전 평시의 90% 이상을 달성했다. 3월에 속속 하향됐던 나프타분해시설(NCC) 가동률도 평시 수준을 회복했다. 한때 ‘위기설’까지 나왔던 쓰레기봉투 등 필수품과 의료용 장갑·주사기류·수액제 포장재 등 보건·의료 필수 품목 부족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우리나라의 나프타 수출제한은 무역 및 산업계에 또 다른 과제를 던졌다. 중국·일본 등 주요 나프타 수입국들 사이에서 ‘한국만 믿어서는 안 된다’는 위기의식이 확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은 나프타 수출제한 고시가 시행된 다음 날인 3월 28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나프타 수출통제는 국내 생산 기반을 지키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지만 수출통제는 국내 문제를 해결하는 동시에 국제 문제를 만들어 낸다”고 지적했다. 김 실장은 또 “위기 때 공급이 끊겼던 경험은 단순한 사건이 아니라 정책적 기억으로 남아 사태가 끝난 뒤에도 그 기억이 거래 관계의 방향을 바꾸고 때로는 보복과 대체 전략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나프타를 지키려다 리튬과 에너지라는 더 큰 흐름을 잃는다면 그것이야말로 소탐대실”이라고 말했다. 중국은 매년 우리나라로부터 나프타를 170만~200만 톤가량 수입해 간 만큼 이번 수출통제는 이후 리튬·흑연 등 중국 의존도가 압도적인 핵심 품목에서 또 다른 위기가 발생했을 때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경고인 셈이다.
한편 중동 전쟁이 촉발한 글로벌 나프타 대란은 산업 전반의 탈(脫)플라스틱 역시 가속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는 2030년 나프타로 만든 신재(新材) 플라스틱 폐기 물량을 기존 예상치(1000만 톤)보다 30% 감축한 700만 톤 수준으로 낮추겠다는 목표다. 2024년 생활·사업장 폐플라스틱 배출량이 780만 톤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 목표는 앞으로 폐플라스틱 배출량이 현재 수준을 넘지 못하게 하겠다는 의미다. 정부는 또 식품 및 화장품 용기, 비닐 등 나프타가 핵심 원료가 되는 주요 생활 품목에도 재생원료 사용 목표를 설정하도록 규제를 강화할 방침이다. 현재 재생원료 사용 목표는 무색 페트병 등에만 적용되고 있는데 이를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재활용이 어려운 제품·재료·용기 제조업자에게 부담금을 부과하는 폐기물 부담금 납부 대상을 확대하고 부담금 요율도 현실화할 계획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