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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량 연료 판매 반등…정유사·주유소도 모두 ‘비명’

15.06.2026 1분 읽기

정유사가 전국 주유소에 공급하는 차량용 휘발유와 경유의 판매량이 5월 들어 전년 대비 1.8% 늘었다. 차량용 기름의 도매 판매량은 미국·이란 전쟁이 발발한 2월 이후 꾸준히 감소세였으나 넉 달 만에 반등했다. 석유류 가격 인상을 최소화하기 위해 시작했던 석유 최고가격제가 정책적 한계에 도달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제기됐다.

14일 재정경제부에 따르면 5월 차량 연료 판매량은 전년 대비 1.8%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차량 연료 판매량은 미국·이란 전쟁이 시작된 2월(-1.2%)을 기점으로 3월(-7.3%)과 4월(-22%) 모두 감소했는데 지난달에는 오히려 증가했다.

각 주유소가 소비자에게 판매한 소매량을 기준으로 삼는 산업통상부 자료에서도 석유 제품 판매량은 4월(-9.7%) 대비 5월(-4.7%)에는 감소 폭이 줄어드는 모습을 보였다. 업계 관계자는 “소비가 빠르게 회복되고 있는 추세”라며 “소비자들이 가격에 적응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최고가격제의 출구전략을 모색하지 않으면 정유사들의 누적 손실(기회이익 상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이를 보전하기 위한 정부 재정 소요만 더 크게 늘어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5월 말 기준 정유 업계의 손실액은 3조 원을 넘기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그럼에도 정부가 석유 최고가격제 중단을 망설이는 것은 그동안 억눌려 왔던 기름값 인상 유인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면서 소비자물가를 자극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5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3.1%까지 치솟은 상황에서 최고가격제 중단까지 겹칠 경우 4%를 넘는 물가 상승률이 찍힐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이에 정부 내에서는 미국·이란 전쟁이 당장 종료되더라도 상당 시간 여유를 두고 최고가격을 종료하겠다는 입장이 우세하다. 전쟁 종료 이후 호르무즈해협 항해가 완전히 안정될 때까지 상황을 지켜봐야 한다는 논리다.

산업부 관계자는 “호르무즈해협으로 다시 유조선들이 자유롭게 들어가는 상황이 돼야 안정적인 상황이라 볼 수 있지 않겠느냐”며 “유가도 하향 안정화는 물론 어느 정도 예측 가능성이 확보돼야 해제 요건이 충족된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19일 0시부로 종료되는 최고가격제는 한 차례 더 연장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전문가들은 최고가격제가 오래 유지될수록 시장 왜곡이 더 커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하고 있다. 손양훈 인천대 명예교수는 “높은 가격이라도 같은 수준이 몇 주 동안 유지되면 소비자들은 이에 적응한다”며 “석유제품 최고가격이 가지고 있는 소비 억제 효과가 점점 없어지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정부가 3월 27일 석유제품의 ℓ당 최고가격을 휘발유 1934원, 경유 1923원, 등유 1530원으로 설정한 후 11주 넘게 변화 없이 유지 중이다 보니 이 가격대에서 소비자들이 느끼는 부담감이 점점 줄고 있다는 의미다.

실제 일선 주유소의 석유제품 소매 가격의 움직임도 제대로 된 가격 신호를 주지 못하고 있다.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시스템(오피넷)에 따르면 6월 2주차(7~11일) 전국 주유소 휘발유 평균 판매가는 ℓ당 2009.9원으로 전주 대비 0.5원 떨어졌다. 지난달 2주차에 ℓ당 2011.8원으로 정점을 찍은 뒤 4주 연속 하락한 결과다.

경유 평균 판매 가격 역시 5월 2주차 2006.2원에서 6월 2주차 2004.8원으로 한 달 내내 꾸준히 떨어졌다. 변동 폭은 작지만 지속 하락함으로써 소비자들이 소비를 억제할 유인이 약해진 것이다. 손 교수는 “해외 자원 의존율이 높은 나라가 위기 상황에 취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정책은 소비 억제”라며 “최고가격을 설정하더라도 조금씩 올리는 방식으로 소비자에게 적절한 신호를 보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지출해야 할 재정 부담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는 점도 최고가격제의 부작용 중 하나다. 앞서 정부는 석유제품 최고가격제를 실시하며 가격 통제로 인해 민간 기업에 발생하는 손실은 보전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추가경정예산으로 예비비 4조 2000억 원도 확보해 뒀다. 업계는 손실 정산에 국제 제품 가격 변동을 반영해달라 주장하고 있지만 정부는 도입 원가 기반 정산 원칙을 고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구체적인 정산 원칙이 담긴 고시는 이달 중 제정될 예정이다.

업계는 이처럼 정산을 진행하면 유가 하락기에 상당한 재무 부담에 직면할 것이라고 우려한다. 정유사는 유가 상승기에 재고로 쌓아둔 원유의 평가 가치가 상승하면서 ‘재고 평가 이익’을 누리지만 반대로 유가 하락기에는 재고 가치도 함께 하락해 ‘재고 평가 손실’을 감수해야 한다. 그런데 유가 상승기에 소매 가격을 최고가격제로 묶으면서 손실을 일부만 정산해주면 유가 하락기에 버틸 여력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최고가격제가 길어지면서 영세 주유소들의 시름도 깊어지고 있다. 정유사가 납품하는 도매가격을 최고가격으로 묶어둬도 주유소마다 실제 판매 가격은 천차만별이다. 개별 주유소별로 인건비, 영업비, 재고 비용이 모두 상이해서다. 전쟁 발발 직후 최고가격제 시행 이전 유가가 급격히 치솟은 기간에 재고를 비싸게 확보한 주유소들은 손실이 불가피한 구조다. 정유사 직영 주유소나 정부 지원을 받는 알뜰주유소 등이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팔다 보니 영세 자영 주유소들의 매출은 더 악화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영세 주유소들은 석유제품 최고가격제를 시행한 이후 하루에 한 곳 꼴로 문을 닫은 것으로 나타났다. 오피넷에 따르면 11일 기준 전국에서 영업 중인 주유소는 총 1만 296곳이었다. 석유제품 최고가격제가 시행된 3월 13일 1만 392곳에 비해 96곳이 줄어든 결과다. 1만 440곳에 육박했언 올해 초에 비해면 올해만 150곳 가까이가 문을 닫았다. 주유소협회는 2001년에 11%를 웃돌던 각 주유소의 영업이익률은 최근들어 0%대 수준으로 추락 한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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