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저성과자 해고의 정당성을 판단할 때 기업이 근로자에게 실질적인 성과 개선 기회를 제공했는지 여부를 엄격하게 고려하기 시작했다. 단순히 PIP(성과개선프로그램)를 운영했다는 사실만으로는 해고의 정당성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취지다. 법조계에서는 대법원이 저성과자 해고의 법적 틀을 제시한 이후 하급심이 구체적인 인정 요건을 정립하는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14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법 행정7부(권순형 부장판사)는 이달 11일 알리바바코리아가 중앙노동위원회 위원장을 상대로 제기한 부당해고구제재심판정취소 소송 항소심 2차 변론기일을 진행했다.
해당 사건은 A씨가 2023년 상반기 성과평가에서 최하등급을 받은 뒤 두 차례 PIP를 수행했지만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해고된 사안이다. 1심 법원은 A씨가 휴직 후 생소한 업무로 전환된 직후 저평가를 받은 점, 회사가 PIP 과정에서 목표를 변경하거나 평가기준을 일관되게 적용하지 않은 점 등을 근거로 사측의 해고가 부당하다고 판단했다. 현재 항소심에서도 PIP 운영 과정의 적정성과 해고의 정당성 여부가 주요 쟁점으로 다뤄지고 있다.
중앙지법도 올해 1월 B씨가 C회사를 상대로 제기한 해고무효확인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B씨는 저성과자로 분류돼 대기발령된 뒤 두 차례 역량향상프로그램에 참여했지만 기준 점수를 넘지 못해 해고됐다. 법원은 B씨가 20년 넘게 근무하면서 장기간 평균 이상의 성과를 유지해 온 점, 실적 부진에 경기 침체와 시장 환경 변화 등 외부 요인이 작용한 점 등을 지적했다. 특히 회사가 ‘신규 거래선 개척을 통한 3개월간 6억 원 매출 달성’을 목표로 제시한 데 대해 “현실적으로 달성하기 어렵다”고 판단하며 해고 무효를 인정했다.
두 사건은 모두 PIP를 거친 저성과자 해고의 정당성이 쟁점이 됐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PIP를 둘러싼 해고 정당성 논쟁은 오래전부터 이어져 왔다. 근로기준법 제23조는 사용자가 근로자를 정당한 이유 없이 해고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에 기업들은 저성과자에 대한 해고에 앞서 성과 개선 기회를 제공하기 위한 수단으로 PIP를 활용해 왔다.
이 과정에서 대법원은 2021년 현대중공업 저성과자 해고 사건에서 통상해고의 정당성을 인정했다. 당시 현대중공업은 3년간 인사평가 결과 하위 2%에 해당하는 과장급 이상 직원들을 대상으로 약 10개월간 직무재배치 교육을 실시했다. 이후 새로운 부서에 배치된 직원들 가운데 다시 최저 등급 평가를 받은 직원들은 해고됐다. 대법원은 평가의 공정성과 객관성이 인정되고, 장기간 성과 부진이 지속된 데다 회사가 직무재배치 교육 등을 통해 충분한 개선 기회를 제공했다는 점을 근거로 해고가 정당하다고 판단했다.
다만 최근 하급심은 현대중공업 판결이 제시한 ‘개선 기회 제공’ 요건을 보다 엄격하게 해석하는 흐름을 보이고 있다. 문해진 법무법인 동인 변호사는 “대법원은 PIP 제도 자체는 원칙적으로 허용된다는 입장이지만, 남용될 경우 위법이 될 수 있다는 기준도 함께 제시하고 있다”며 “최근 하급심은 개선 기회 부여, 평가의 객관성, 절차의 공정성 등을 중심으로 저성과자 해고의 구체적인 인정 요건을 정교화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법조계에서는 하급심 판례가 축적됨에 따라 PIP 프로그램이 단순히 시간을 부여하는 수준을 넘어 근로자의 약점을 진단하고, 멘토링이나 코칭 등을 통해 개선 방안을 제시하는 방향으로 발전할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일부 자동차·세일즈 업종에서는 PIP를 3회가량 운영하고 우수 영업사원을 멘토로 배정하는 등 구체적인 지원을 제공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이태은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는 “최근 판결의 핵심은 PIP의 횟수나 기간보다 실질성”이라며 “저성과의 원인이 영업 역량 부족이라면 판매기법 교육이나 우수 직원 멘토링 등 직접적인 개선 프로그램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해고 소송으로 갈 경우 회사가 개선 기회를 제공했다고 주장하더라도 이를 뒷받침할 기록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며 “교육자료나 멘토링 기록 등을 체계적으로 남겨둘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