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대 1학년, 출석부에 이름만 남기고 놀러 다니고 싶은 유혹을 겨우 이기고 어찌어찌 형법총론 강의실 의자에 몸을 구겨 넣고 앉아 있던 어느 날, 교수님께서 신호등 이야기를 꺼내셨다. 다른 법도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형법은 사회의 신호등 역할을 해야 한다는 말씀이었다. 해서는 안 되는 행위에는 분명한 빨간불을, 해도 되는 행위에는 확실한 초록불을 켜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노란불을 애매하게 깜빡이며 사람들을 갈팡질팡하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었다.
당시에는 죄형법정주의, 그중에서도 명확성의 원칙과 예측 가능성을 쉽게 설명해 주시려는 비유 정도로 들었다. 그런데 20여 년이 지난 지금도 그 말은 종종 머릿속을 맴돈다. 사회가 복잡해질수록 모든 범죄를 단어 몇 개, 문장 몇 줄로 규정하기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유독 경제 분야에서는 노란불이 지나치게 많이 깜빡이는 듯하다.
대표적인 예가 실무와 학계에서 오랫동안 문제를 제기해 온 자본시장법 제178조다. 이 조항은 “부정한 수단, 계획 또는 기교를 사용하는 행위”를 처벌한다. 그런데 이 문장을 읽고 앞으로 하려는 행위가 적법한지 위법한지 자신 있게 예측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나쁜 짓 하면 처벌하겠다”는 선언과 얼마나 다른지 의문이다.
배임죄도 크게 다르지 않다.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란 누구인지, 임무에 위배한다는 것은 무엇인지 법문만 읽어서는 좀처럼 감이 오지 않는다. 수천 건의 판례를 섭렵한 법률가라 해도 오늘 결재할 사업상 의사 결정이 훗날 형법의 그물에 걸릴지 아닐지를 장담하기는 어렵다.
물론 자본시장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확보하고, 신뢰 관계를 저버리는 행위를 규제해야 한다는 입법 취지 자체를 부정할 사람은 없다. 문제는 그 목적이 아무리 정당하더라도 처벌의 기준이 지나치게 불명확하면 정상적인 의사 결정마저 위축된다는 점이다. 기업 경영에서는 더욱 그렇다. 노란불 앞에서 머뭇거리다 기회를 놓치는 경우도 많지만, 반대로 결단을 내렸다가 훗날 형사 책임 논란에 휘말릴 위험도 감수해야 한다. 국가가 행사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공권력인 형벌이 버티고 서 있기 때문이다.
형사처벌은 누구에게나 예측 가능해야 한다. 어디서 멈춰야 하는지 빨간불은 분명해야 하고, 어디까지 나아가도 되는지 초록불 역시 분명해야 한다. 그래야 사람들은 위축되지 않고 능동적으로 판단하고 도전할 수 있다. 이제는 경제 형벌 규정 곳곳에서 깜빡이는 노란불의 개선을 진지하게 고민할 때가 되었다. 법이 신호등이라면, 적어도 운전자에게 색깔만큼은 분명히 보여주어야 하지 않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