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이 차세대 인공지능(AI) 반도체인 10세대 텐서처리장치(TPU·코드명 아이스피시)의 핵심 부품 생산 파트너로 삼성전자(005930) 를 검토하는 것은 대만 TSMC에 전적으로 의존하던 AI 공급망의 한계를 공급처 다변화로 극복하기 위해서라는 분석이다. AI 가속기의 성능을 좌우하는 고대역폭메모리(HBM)를 안정적으로 선점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2024년 스마트폰용 모바일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물량을 TSMC로 옮겼던 구글이 2년여 만에 다시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부에 협력 의사를 내비치면서 양 사의 파트너십이 AI 전방위로 확대되는 모양새다.
글로벌 첨단 파운드리 시장은 TSMC가 사실상 독점해왔다. 시장조사 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올해 1분기 파운드리 시장에서 TSMC는 점유율 73%를 기록하며 2위인 삼성전자(7%)를 크게 앞섰다. 그러나 AI 반도체 수요가 폭증하면서 TSMC의 생산능력은 임계점에 달했다. 엔비디아·애플 등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이 TSMC의 3㎚(나노미터·10억분의 1m) 이하 선단 공정을 선점하면서 공급 병목현상이 심화했기 때문이다. 웨이저자 TSMC 회장 역시 이달 9일 열린 주주총회에서 “고객 수요가 너무 많아 감당하는 데 한계가 있다”며 “TSMC가 병목현상을 일으키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자체 반도체 설계 역량을 갖춘 빅테크 기업들은 이에 따라 안정적인 공급망 확보를 위해 멀티 파운드리 전략을 취하기 시작했다. 애플이 아이폰용 칩 일부를 인텔에서 생산하기로 예비 합의를 맺은 것이 대표적이다. 삼성전자 역시 이 기회를 통해 테슬라의 차세대 자율주행 칩(AI5·AI6) 물량 약 25조 원(165억 달러)을 확보한 데 이어 엔비디아의 언어처리장치(LPU) ‘그록3’ 등을 잇달아 수주하며 글로벌 고객사 외연을 넓히고 있다.
구글이 2028년 양산을 목표로 하는 10세대 TPU 프로젝트에서 삼성전자에 타진한 부품은 메모리 입출력 다이(I/O Die)다. I/O 다이는 연산장치와 HBM 사이에서 데이터가 정체 없이 흐르도록 돕는 핵심 연결판이다. 메모리 업체에 따라 베이스 다이나 로직 다이로 불리는 핵심 부품이다. 구글은 핵심 연산 칩은 TSMC의 1.4나노 공정에 맡기되 메모리 연결을 담당하는 I/O 다이는 삼성전자의 2나노 공정을 활용하는 이원화 구성을 검토하고 있다.
이번 수주 논의는 그동안 TSMC가 사실상 독점해오던 로직 다이 영역에 삼성전자가 진입했다는 점에서 기술적 의미가 크다. 삼성전자는 6세대 HBM(HBM4) 개발 과정에서 자사 시스템LSI 사업부가 설계하고 파운드리 사업부가 4나노 공정으로 생산하는 방식으로 자체 로직 다이 기술을 축적해왔다. 그동안 삼성전자 내부 생태계에서 쓰이던 로직 다이 역량이 구글의 핵심 AI 가속기 공급망에 채택되는 계기가 마련된 셈이다.
구글의 파운드리 협력 모색은 AI 시장의 필수 메모리인 HBM을 안정적으로 선점하기 위한 전략적 포석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AI 가속기 생산은 HBM 수급과 직결된다. 구글 입장에서는 I/O 다이 물량을 삼성전자에 배정함으로써 향후 10세대 TPU에 탑재될 차세대 HBM 물량 협상에서 우선권을 쥐겠다는 계산이다. 양 사는 2021~2024년 픽셀폰용 텐서 칩 생산을 함께한 인연이 있으며 지난해에도 구글 TPU에 들어가는 HBM 물량의 60% 이상을 삼성이 공급하는 등 긴밀한 협력 관계를 유지해왔다.
삼성전자는 파운드리 미세공정과 HBM, 첨단 패키징을 일괄 제공하는 종합반도체기업(IDM) 턴키 솔루션의 경쟁력을 입증할 기회를 잡게 됐다. 수주가 구체화될 경우 실적 부진을 겪던 삼성전자 비메모리(파운드리·시스템LSI) 사업부의 흑자 전환도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투자증권에 따르면 삼성전자 비메모리 사업은 올 2분기 3880억 원 적자, 3분기 790억 원 적자를 거친 뒤 4분기 1540억 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하며 흑자 전환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어 2027년 4분기에는 분기 영업이익이 7310억 원까지 늘어나며 연간 2조 원대 실적을 내는 본격적인 턴어라운드 구간에 진입할 것으로 전망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