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병권
논설위원
주택 전세는 세입자가 월세 납부 없이 목돈을 맡기고 집을 빌렸다가 계약이 끝나면 보증금을 돌려받는 한국 특유의 임대차 제도다. 그 연원은 조선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742년 ‘승정원일기’에는 우의정을 지낸 광성부원군 김극성의 자손이 곤궁해 집을 400냥(지금의 수천만 원)에 세놓고 낙향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근대적 형태의 전세는 1876년 강화도조약 이후 본격화됐다. 당시 부산·인천·원산의 개항으로 한양 일대로 유입된 사람들이 집값의 70~80%에 가옥을 빌렸다고 한다.
6·25 전쟁 이후 인구가 일자리를 찾아 서울 등 대도시로 급격히 몰리며 주택난은 극심해졌다. 서민들이 주택 구입 자금을 빌릴 정책 모기지는 존재하지 않았고 은행 대출 문턱은 높았다. 그렇다고 월세를 살자니 목돈을 모으기 힘들어 꺼렸다. 차라리 보증금이라도 남길 수 있는 전세를 선호했다. 집주인도 월세 독촉 스트레스 없이 보증금을 은행에 맡겨 이자를 받거나 대출을 갚으면 되니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다. 정부의 주택 공급 부족과 금융의 미성숙을 해결하려 민간이 찾아낸 자구책이 전세인 셈이다.
최근 이재명 대통령은 전세를 “일종의 사금융”이라며 “전세 대출을 많이 해준 게 집값 상승의 주된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시장에서는 조만간 전세 대출 규제, 과세 강화 정책이 나오는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전세 보증금이 집주인의 갭투자 자금으로 활용된 측면도 있다. 그러나 서민과 중산층의 주거사다리 역할을 했던 것도 사실이다. 전세는 세입자에게는 구입가보다 낮은 가격에 최소한 4년간 집을 이용할 권리를 주는 민법상 ‘용익물권’이자 최우선 변제를 보장하는 ‘채권’이기도 하다. 세입자는 민법과 주택임대차보호법으로 두터운 보호도 받는다. 정부는 전세에 메스를 대기 전에 역기능뿐 아니라 순기능과 역사적·사회적 맥락을 두루 살펴야 한다. 집값 불안을 전세 등 민간 탓으로만 돌릴 것이 아니라 주택 공급 부족, 수도권 집중, 왜곡된 금융 정책을 먼저 돌아봐야 교각살우를 피할 수 있다.
